지난 2월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위협을 받고 있는 시리아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총력태세에 돌입했다. 시리아는 안보리가 31일 하리리 암살사건 조사에 대한 시리아 정부의 협조 미흡을 이유로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제안한 제재 결의안을 논의키로 하자 초긴장하고 있다. 안보리는 31일 이사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시리아 정부가 향후의 하리리 암살사건 조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을 경우 경제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결의안 초안은 시리아 정부가 유엔 조사단이 용의자로 지목한 인사들을 구금토록하면서, 이들의 해외여행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도록 모든 나라에 촉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중동지역 안정을 방해하는 국가로 미국이 꼽고있는 시리아에 대한 서방권의 외교공세가 거세져 2000년 사망한 부친의 뒤을 이어 시리아를 통치해온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 조사위 구성 = 시리아는 유엔 제재를 피해 나가기 위한 대책으로 하리리 암살 사건과 관련해 시리아 부분을 조사할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고 29일 전격 발표했다. 유엔은 데틀레프 메흘리스 유엔 조사단장 주도로 지난 4개월 간 진행한 조사에 시리아 정부가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고 비판해 왔다. 유엔 조사단은 또 지난 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아사드 대통령의 동생 등 측근들이 하리리 암살사건을 꾸민 것으로 사실상 결론지어 이 사건에 대한 아사드 대통령의 사전 인지 의혹을 증폭시켰다. 아사드 대통령은 미국 등이 유엔 조사에 대한 협조 미흡을 꼬투리 잡아 제재 압박을 가해오고 있는 점을 고려해 자체 특별조사위 구성을 명령했다. 시리아는 여성 판사 출신인 가다 무라드 검사 등 2명에게 특별조사위를 이끌도록 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는 유엔 측과 협조하면서 하리리 암살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유엔 조사단이 의심했던 시리아 정보기관의 고위관리 등을 조사하게 된다. 시리아 정부는 주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엔의 향후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혀 경우에 따라서는 유엔이 특별조사위를 통해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벌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시리아 관영 사나(SANA) 통신은 모함마드 알-가파리 시리아 법무장관을 인용해 특별조사위가 하리리 암살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사람을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방위 외교전 = 시리아는 유엔제재를 피하기 위한 외교전도 강화하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28일 미국 정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랍권 지도자로 꼽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다마스쿠스로 긴급 초청해 도움을 호소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하리리 암살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아사드 대통령은 이 의견을 받아들여 특별조사위 구성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드 대통령은 또 주요 서방국가들에 하리리 암살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는 왈리드 무알렘 외교부 부장관을 걸프지역에 파견해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유엔 제재 움직임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펴고 있다. 무알람 부장관은 29일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을 예방해 아사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31일의 유엔 안보리 외무장관 회의에서 자국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사나 통신은 압둘라 국왕이 시리아 지지 입장을 확인하면서 국제사회가 시리아에 압력을 가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무알렘 부장관은 30일 카타르에서 현재 거론되는 결의안은 유엔 조사보고서가 나오기 1개월 전부터 준비된 것이라면서 유엔이 불공정하게 시리아를 제재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세적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사나통신은 파루크 알-샤라 외교장관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안보리 이사국 외무장관들을 접촉해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리아는 거부권을 쥔 러시아, 중국이 제재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결의안이 채택되더라도 제재 가능성을 거론하는 부분은 빠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