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점진적인 변화는 불가피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벤 버냉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 선보일 통화 정책에 대한 월가의 전망은 이렇게 요약된다. 버냉키 지명자의 통화 정책과 관련한 철학이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비슷한 만큼 큰 틀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가 '인플레이션 타기팅(물가 목표제)'을 주창해 온 데다 디플레이션 우려의 목소리를 키운 경력이 있어 금리 인상을 비롯한 통화 정책에 어느 정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정책 기조 당분간 유지된다 버냉키 지명자가 상원의 인준을 거쳐 내년 2월1일 FRB 의장에 취임하더라도 그린스펀 체제의 통화 정책을 금방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는 2002년부터 3년여 동안 FRB 이사로 재직할 때 그린스펀의 사고와 가장 닮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린스펀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적극적이며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장 참가자들은 버냉키의 발언을 통해 그린스펀의 사고를 엿볼 정도였다. 그는 2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그린스펀 체제의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말해 월가의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버냉키는 또 미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점진적인 변화는 불가피하다 버냉키 지명자는 FRB 이사로 활동하면서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목소리를 키우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11월엔 "FRB가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경기 수축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7월에는 한술 더 떠 "금리 인하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연방기금 금리를 제로 포인트(0%)로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 때문에 그는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에 있어서 분명히 덜 공격적인 '비둘기파'이며 물가보다는 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4일 뉴욕 증시는 급등한 반면 채권 시장이 약세를 보인 것도 이런 분석이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버냉키가 물가의 목표 수준을 1~2%로 제시한 이력이 있다"는 모건스탠리의 지적을 감안하면 그를 단순히 '비둘기파'로 속단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건 현재의 경제 상황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 최근 FRB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냉키는 "핵심 물가는 1~2% 범위에서 오르는 데 그쳐 전반적인 가격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잘 통제되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각에다 그의 점진적이고 신중한 평소의 태도를 감안하면 통화 정책도 중·장기적으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결할 과제는 많다 그린스펀 시대와 버냉키 지명자 시대는 환경이 다르다. 그린스펀도 두 번의 증시 붕괴 및 두 번의 경기 침체 등 굴곡을 겪긴 했다. 지금은 환경이 더 어렵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고용 불안,누적되는 경상 적자와 재정 적자,부동산 경기 붕괴 우려에다 잦은 허리케인 발생까지 겹쳐 있다. 그린스펀과 철학적으로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버냉키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FRB 의장으로서의 명성까지 닮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