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죄다!" 이라크를 23년간 호령했던 사담 후세인(68) 전 이라크 대통령은 19일 전세계를 향해 갸냘프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지구촌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세인의 재판은 이날 정오(현지시간)가 넘어서면서 막이 올랐다. 당초 예정보다 2시간 가량 늦은 것이었다. "사담 후세인 알-마지드 출정(出廷)하시오." 1982년 있었던 두자일 마을 시아파 주민 학살 사건의 수괴로 지목된 후세인은 옛 부하 7명을 앞세우고 바트당사로 쓰였던 바그다드 그린존 내의 특별법정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후세인은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을 받으면서 시작한 오랜 도피생활과 그후 이어진 수감생활 탓인 지 다소 쇠약해진 모습이었지만 몸태에는 꼿꼿함이 남아 있었다. 허리 높이의 철제 봉으로 둘레가 쳐진 피고인석의 맨 앞쪽에 자리잡은 후세인에게는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리 수갑은 채워지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손에는 이슬람 경전 코란 1권이 들려 있었다. "나는 헌법상 이라크 대통령이다." 후세인은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리즈가르 모함메드 아민 주심판사의 인정신문이 시작되자 아민 판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도전적으로 웅변을 쏟아냈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당신은 이라크 사람인데 나를 모른단 말이냐. 당신이야말로 누구냐? 도대체 이 법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가혹한 공포정치로 이라크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했던 후세인의 기세가 되살아나 재판부를 압도하는 듯 했다. 쿠르드족 출신인 아민 주심판사는 후세인이 완강하게 인정신문을 거부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후세인의 인적사항을 본인이 직접 확인하는 편법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후세인과 함께 법정에 선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총리는 "후세인 대통령 각하가 말씀한 내용을 반복한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여전한 충성심을 과시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됐다. 이날 재판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공소장 내용을 간략히 고지한 뒤 검찰측이 혐의를 자세히 설명하고 죄를 추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피고인들은 (두자일 마을 주민 학살사건과 관련해) 살인, 불법감금, 강제추방, 국제법 준수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합니까?" 그러나 후세인과 그의 측근들은 이구동성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내 말 잘 들으시오. 내게 무슨 죄가 있다는 거요. 난 무죄요." 후세인은 자신의 반인륜적 죄상을 밝히려는 재판부를 향해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고, 그의 충성스런 부하였던 나머지 피고인들도 후세인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재판부는 재판 시작 수 시간만에 변호인 측의 재판연기 신청을 부분적으로 인용해 내달 28일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TV로 지연중계된 후세인에 대한 첫 공판은 이렇게 끝났다.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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