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18일 하원과 주의회 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전국 2만6천여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지난 1980년 옛 소련의 침공 이후 26년째 내전과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텔레반의 철권통치, 9.11 이후 미국 주도의 데테러전 등에 이르기까지 불행한 역사로 점철되고 있는 아프간에서 총선이 치러지는 것은 36년만에 처음이다. 탈레반이 총선 보이콧과 함께 투표 참가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문을 연 투표소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현지 내외신 언론이 전했다. 아프간 민주주의에 새 전기를 마련할 이번 선거에서는 1천240만명의 유권자들이 하원(월레시 지르가) 의원 249명과 34개 주의회 의원 420명을 선출하게 된다. 하원 의원 후보로 2천800명, 주의회 의원 후보로는 3천명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월레시 지르가 의석의 4분의 1, 주의회 의석의 30%가 여성에게 각각 할당됐고 월레시 지르가에만 약 335명의 여성후보가 등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총선의 후보자가 많은 것은 정당 추천제가 배제되면서 일정한 자격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당국은 투표를 48시간 앞둔 지난 16일부터 대중연설이나 TV광고 등 모든 형태의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했다. 전국에서 일제히 개막된 투표소에는 16만여명의 선거관리 직원들이 참여하며, 491명의 국제 참관단을 포함해 5천여명이 참관인으로 선거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카불에 마련된 투표소로 나와 "아프간 국민의 한사람으로 총선에 참가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내 의지에 따라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프간은 30여년간 전쟁과 외세의 개입 등으로 비참한 생활을 해왔지만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전진할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을 최종 마무리하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바스밀라 비스밀 선광위원장은 "30여년만에 총선이 치러지는 오늘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날"이라며 "이번 선거는 아프간 국민을 위한 것인 만큼 모든 유권자들은 아프간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우리 모두 함께 행동하고 투표에 참가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미래를 향한 이 과정이 원만하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만들자"고 당부했다. 이날 투표는 공식적으로 오후 4시에 종료되지만 투표소에서 줄을 선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권자들은 4시 이후에도 투표에 참가할 수 있다.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평화유지군 1만1천여명과 미군 2만여명과 별도로 아프간 당국이 10만명의 군경을 투표소에 배치, 치안을 대폭 강화한데도 불구하고 선거를 방해하려는 탈레반과 보안당국의 유혈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아프간 남동부의 코스트주의 야코비 지구에서는 이날 새벽 격렬한 교전이 벌어져 무장세력 3명과 경찰 2명이 숨졌으며, 앞서 남부의 헬만드주에서는 투표소를 공격하던 탈레반 요원 1명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수도 카불에서는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동부 교외의 투표소 인근 유엔 건물 단지에 2기의 로켓포가 발사돼 아프간인 선거관리 1명이 부상했다고 아프간-유엔 공동 선거위원회 대변인이 밝혔다. 다만 이같은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투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비교적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치안문제로 인해 이 시간 현재 투표에 차질을 빚고 있는 곳은 다이쿤디주의 기잡 지구에 있는 4-5개 투표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아프간은 통신과 도로 등의 인프라가 거의 최악의 상황에 있는데다 선거를 치른 경험도 부족해 선거 결과를 취합하는데 3주 이상 걸리고 잠정적인 선거 결과는 내달 10일께, 최종 공식 결과는 내달 22일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프간 국민의 70%가 문맹이고 마약밀매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군벌이나 부족장들이 대부분 시골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민주선거가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방당국과 군부, 부족장들의 출마 후보들에 대한 협박이나 투표조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 현지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도 14일 성명에서 "이번 선거는 엄청난 공포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후보자의 상당수는 인권유린의 전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원만하게 끝나더라도 아프간에 완전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향후 사분오열된 사회를 하나로 묶고 다국적군이 철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