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실시되는 쿠르만벡 바키예프(56) 대통령 당선자는 전직 총리에서 야당 지도자로 변신해 집권에 성공했다. 경제 전문가인 바키예프는 총선 부정 시비로 지난 3월 전격 퇴진한 아스카르 아카예프(60) 전 대통령에 의해 2001년 총리에 발탁됐으나 이후 가장 대표적 비판론자로 돌아섰다. 아카예프 대통령이 소위 `레몬 혁명'으로 불리는 시민 무혈혁명으로 축출된 지 하루만인 3월 25일 대통령 권한대행 겸 총리에 임명돼 지금까지 정국 안정과 혼란 극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새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휩싸이자 이번 대선 승리를 위해 최대 경쟁자인 펠릭스 쿨로프 내무장관을 총리에 임명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타협을 시도했다. 레몬 혁명 후 정치권의 핵으로 부상한 바키예프와 쿨로프는 그동안 협력과 갈등을 거듭하며 치열히 경쟁해 왔으며 지난 5월 권력 공유에 합의했다. 아카예프 전 대통령 탄압으로 2000년 이후 수감생활을 해온 쿨로프를 감옥에서 꺼내준 것은 바키예프지만, 레몬 혁명 후 무법천지가 된 수도 비슈케크를 정상화한 것은 쿨로프라는 평가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15년 동안 키르기스를 철권 통치해온 아카예프 전 대통령 정권 붕괴를 초래한 반정부 시위 사태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남부 잘랄-아바트주(州) 출신인 바키예프는 남북 지역 전체에서 고른 지지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02년 총리 시절 남부 지역 평화 시위 과정에서 시민 6명이 경찰 발포로 숨진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력 때문에 야당 지도자로 부적합하지 않으냐는 지적도 받았다. 북부 지방 출신으로 비슈케크 시장을 지낸 쿨로프 내무장관과 향후 협력하지 못하면 나라의 남북 대립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큐비쉐프 소재 종합기술연구소에서 공부한 그는 러시아인 아내 타티야나와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 마라트는 국가안보부서 부책임자로 재직 중이며 차남 막심은 사업을 하고 있다. 1979년 가족과 함께 잘랄아바트로 돌아온 뒤 1990년 콕-양각 마을 위원회 제1 서기에 오르며 정치에 입문해 1992년 잘랄아바트주에 이어 1997년 동부 이시크-쿨주 지사를 역임했다. 바키예프 후보는 11일 현재 88.9%의 지지를 얻어 나머지 5명의 후보를 제쳤다. (비슈케크 AP.이타르타스=연합뉴스) j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