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미국에 밀입국한 멕시코인 앙헬 마르티네스(28)는 아스파라거스, 포도농장의 인부나 트럭운전사 등으로 종종 1주일에 70시간이 넘게 일하면서 시간당 8.50-12.75달러의 임금을 받는다. 마르티네스는 최근 미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사회보장 제도 개혁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사실은 그가 피땀 흘려 번 돈의 일부는 미국 은퇴자들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위한 사회보장기금에 고스란히 흘러들어간다. 그러나 세금은 똑같이 내더라도 그가 합법적인 신분을 획득하지 않는 한 미국인과 같은 혜택을 받을 길은 없다. 뉴욕 타임스는 마르티네스와 비슷한 처지의 불법 이민자 700여만명이 내는 사회보장세로 인해 미국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연간 최대 70억달러(한화 약 7조원)의 '알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은 근로자의 소득 가운데 일정부분을 사회보장세로 자동공제하고 있다. 근로자로서 사회보장세를 일정기간 납부한 미국시민은 65세가 되면 노후 연금을 지급받고 국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길이 없는 불법 이민자들까지 사회보장세를 내게 된 데는 지난 1986년 채택된 '이민개혁ㆍ통제법(IRCA)'의 영향이 컸다. 불법 이민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런 사람을 고용한 업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이 법으로 인해 고용주들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신분 증명 서류를 요구했고 불법 이민자들은 150달러면 살수 있는 신분증을 제출해 일자리를 얻고 있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형식상 필요한 서류를 갖췄는지에만 신경을 쓸 뿐 이들이 납부하는 사회보장세가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사회보장청역시 고용주들이 지급하는 월급에서 일정액이 사회보장세로 자동징수되기만 하면 문제될 것이 없어 '임자없는 돈'은 날이 갈수록 쌓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난 1990년대에 사회보장청에 기록이 접수됐으나 서류 불일치로 인해 실제 수급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급여가 무려 1천89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1980년대의 두배 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가속화돼 실제로 누구에게 지급됐는지 알 수 없는 급여가 매년 평균 500억달러가 넘게 불어나고 있다. 이런 돈에서도 사회보장세는 꼬박꼬박 공제돼 사회보장기금은 매년 60억-70억달러, 메디케어(노인 건강보험) 기금은 매년 약 15억달러의 잉여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보장청은 주인이 파악되지 않은 세금보고 서류는 '보류'로 분류해놓고 이런서류가 특히 많이 나오는 고용주들에게는 편지로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편지는 불법 이민자들이 조작된 서류로 취업했음을 드러내 종종 고용주들이 이들을 해고하는 빌미가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불법이민자 스스로가 이민당국의 추적이 두려워 자취를 감추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불법이민자들은 결국에는 미국내 다른 직장에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회보장청의 편지는 사회보장기금에 대한 불법이민자들의 본의 아닌 '기여'를 줄이는 역할은 사실상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대학 이민연구소의 마르셀로 수아레즈 오로스코 공동소장은 "사회보장 체제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수있는 가장 빠른 길은 불법 이민"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사회보장 체제의 파산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강력한 개혁방안을제안하고 있지만 이처럼 돈을 내기만 할 뿐 찾아가지는 않는 불법 이민자들이 지속적으로 미국에 유입되는한 당초 예정된 사회보장의 기금 고갈은 훨씬 늦춰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자신들이내는 사회보장세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회보장청이 보낸 편지로인해 불법이민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치즈공장에서 해고된 미네르바 오르테가(여.25)는 지난해 사회보장세로 1천200달러를 납부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사회보장세를 납부했다고 해서 혜택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직장을 다시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