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베이징시 중관춘(中關村)에 자리잡은 칭화(淸華)대.칭화대 동문에서 보면 칭화쯔광(淸華紫光)이라는 간판을 단 기업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 정부로부터 5백대 중점기업으로 선정된 이 회사는 칭화대의 대표적인 "샤오반(校辦)기업",즉 대학이 설립한 학교기업이다. 1988년 창립돼 컴퓨터,소프트웨어,네트워크 장비 등 정보기술(IT)뿐 아니라 항생물질 등 의약 바이오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99년 중국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이처럼 현재 칭화대가 운영하고 있는 '샤오반기업'은 90여개.이들의 매출액은 한해 2003년 1백44억위안(약 1조8천억원)에 달한다. 칭화대는 지주회사격인 '칭화지주유한공사'를 통해 칭화쯔광,칭화퉁팡(淸華同方) 등 6개 상장회사를 포함한 46개 자회사를 관리하며,룽융린(榮泳霖) 회장은 칭화대 총장 비서실장을 겸임하고 있다. 해마다 이들 기업 순익의 10% 정도가 칭화대 재정으로 흘러들어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에 쓰인다. 이들 회사는 대학이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하며 졸업생을 우선 채용한다. 지난달 칭화대의 산·학협력 성공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저우원창 교수는 "칭화대는 정규 교육과정의 하나로 교수와 학생을 기업의 연구에 동참시키고 여기에 쓰이는 연구기금은 정부와 기업이 절반 정도를 지원한다"며 "작년 한햇동안 11억위안(약 1천4백억원)의 연구기금을 지원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산·학 협력을 통해 질 높은 수준의 졸업생을 배출시킨 결과 졸업생 1명당 평균 6건의 취업 제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칭화대뿐 아니다. 베이징대 산하의 40여개 샤오반 기업의 2003년 매출도 1백66억위안(2조원)에 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산파역을 한 미국 스탠퍼드대는 기업에 인력을 제공했을 뿐 직접 경영하지는 않았지만 칭화대 등 중국 대학들은 학교가 직접 기업을 설립,'산·학 협동'을 넘어 '산·학 일체(一體)'를 시도하고 있는 것. '교육경쟁력 세계 1위'인 핀란드는 대학을 중심으로 산·학·연 클러스터를 만들어 최첨단 기술국으로 발돋움한 경우다. 펄프,기계 등이 주력 산업이던 핀란드는 92년 경제 위기를 맞은 뒤 대대적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2백여개 직업기술훈련원을 통합해 행정구역별로 1개씩,모두 29개의 '폴리테크닉'(4년제 기술대학)을 만들고,이를 중심으로 과학도시를 건설했다. 대학과 각종 연구소,병원 등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기업도 과학도시로 몰려들었고 산·학 협동에 의한 공동연구개발이 본격화됐다. 현재 헬싱키(에스푸시),울루,템페레 등 총 19개의 과학도시가 조성돼 있다. 울루 과학도시는 노키아의 R&D 센터로도 유명하며,헬싱키 인근의 오타니에미 과학도시는 북유럽 최대 민간 벤처 인큐베이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크리스타니 볼마리 담당관은 "전문 실무를 가르치는 폴리테크닉과 대학을 묶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집중적으로 공급한 결과 산·학 협력이 크게 활성화돼 기업과 경제가 살아났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경우 비영리법인인 학교가 기업을 세우는 것은 철저히 금지돼 오다 지난해 3월에야 교육과정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을 경우 제한적으로 학교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85년부터 샤오반기업을 활성화시킨 것에 비해 무려 20년이 늦은 것. 산·학·연 클러스터의 발전도 정체돼 있다. 한국의 대표적 산·학·연 클러스터인 대덕밸리의 경우 정부출연 연구소만을 한군데로 모아 놓은 데 불과해 해외 기업은 물론 국내 대기업마저 입주를 외면하고 있다. 또 규모와 임금 수준,작업 방식 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구성 주체간 인력 교류도 거의 없어 혁신기술 개발보다는 생산·제조 위주의 클러스터가 되고 있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김현석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