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H.W. 부시(41대 미 대통령)와 그의 아들조지 W.부시(43대 대통령). 두 사람은 모두 공화당 소속으로 미국 대통령을 한 번씩 지냈고 똑같이 연임에도전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는 이력 상으로는 뚜렷하게 닮은 꼴이다. 명문 필립스앤도버 고교와 예일대 동문이며 텍사스 석유를 기반으로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첫 임기 시작 때 경제가 호황이었다는 점도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1991년과 2003년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이들 부자에게 사담 후세인은 공동의 적이다. 하지만 이런 공통점을 제외하면 성(姓)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부시 부자는 무척이나 다르다. 아버지 부시는 명문가의 모범생답게 예일대에서 탁월한 성적을 올리고 야구팀의주장을 맡았으며 2차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는 팔방미인 형으로 일찌감치정치에 뛰어들어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아들 부시는 그렇지 못했다. 가문의 후광 덕에 예일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야구부에서도 주전으로 뛰지 못할 정도였으며 베트남 전에도 참전하지 않았다. 1973년 아버지 부시가 공화당 전당 대회 의장일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다니던 아들 부시는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이웃집 차고를 들이받는 등 마흔이 될 때까지 술과 연애로 세월을 보내 늘 걱정을 끼치던 사고 뭉치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 부시는 1994년 아들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로 당선됐을 때조차아들에 대해 미심쩍어 했고, 부시 가문에서는 오히려 현재 플로리다 주지사를 하는젭 부시가 정치가로서 가능성이 더 크다는 평판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연임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고 아들은 축배를 들었다. 아버지 부시는 선거 당해 봄의 업무 수행 지지도가 50% 이하를 기록한 대통령은대선에서 패배했던 과거의 전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들 부시는 벗어났다. 아버지 부시는 1992년 봄 지지도가 34%, 아들 부시는 42%였으나 아버지는 재선에 실패했고 아들은 성공했다. 아들 부시가 재선에 도전한 상황은 아버지 부시보다 더 나빴다.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에서 이기고도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지만 아들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끝내지도 못하고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는데다 국제유가와 실업률마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아들 부시가 아버지 부시의 전철을 밟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도 여겨졌지만 아들 부시는 승리했다. 따라서 이번 승리는 아들 부시가 아버지 부시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