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건강이 "매우 어려운 상태"로 위독한 것으로 알려지자 그의 용태에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는 아라파트 수반의 사망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계는 물론 전체 중동 정세에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각종 부패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권력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반세기 가까이 이스라엘에 맞서 독립운동을 이끌어 오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아라파트이기에 그의 죽음과 쾌유 여부는 중동정국 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힘의 불균형과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감안할 때 그의 죽음이 중동평화에 기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갈등의 확산과 충돌의 격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좀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복잡한 역사와 정세만큼이나 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고 테러라는 극한 상황이 일상이 돼버린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돌출변수가 극단적인 결과를가져올 수도 있는 곳이 팔레스타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팔레스타인이 아라파트 사망시 동예루살렘의 이슬람-유대교 공동성지인 `하람 알-샤리프(고귀한 성지.템플 마운트)'를 장지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아라파트 장례문제의 처리 결과가 향후 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정세를 가늠해볼 수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팔레스타인에서는 모두의 지지를 받는 확고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어서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내부의 강온세력간 권력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라파트는 유력한 경쟁자였던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를 거세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당분간 아흐마드 쿠라이현 총리와 압바스 전 총리, 살림 자아눈 자치의회 의장의 3인 지도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5, 6개 주요 무장ㆍ정치단체들을 조정할 능력이 이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아라파트는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도전을 받아왔지만 주요 정파와 무장단체들 사이에 유일한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아라파트가 없는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 등 무장단체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포스트 아라파트 시대를 결정하는 중요변수 가운데 하나로 작용할 것으로보인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아라파트 사후 온건한 인사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것이 오히려 무장단체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중동 전체로는 아라파트 수반의 사망은 중동 장기 집권 지도자들의 본격적인 세대 교체를 알리는 전주곡이자 이스라엘과 아랍 간 증오와 대립의 완충지대 상실을의미한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저항과 독립투쟁의 대명사였으며, 아랍권은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과 직접 부딪치지 않고도 싸우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사라지면 아랍권은 이스라엘과 화해냐 대립이냐를 분명히 선택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 역시 모든 테러공격의 책임을 아라파트에게 씌웠던 `정치적 편의'를 잃게되면 하마스, 지하드와 직접 싸우든가 평화를 선택하든가 택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속에서 아랍권과의 관계를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김계환기자 k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