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치국:본인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하도록 당 중앙에 요청함"(中央政治局:我向中央請求辭去現在擔任的中共中央軍事委員會主席的職務.)" 지난 19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6기 4중전회)가 승인한 장쩌민(江澤民)의 군사위 주석 사직서의 첫 문장은, 1989년 11월9일 열린공산당 제13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3기 5중전회)에서 처리된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직서와 이렇게 똑같았다. 당시 덩샤오핑의 사직서는 톈안먼(天安門)사태로 깜짝 등장한 장쩌민이 리펑(李鵬), 차오스(喬石) 등 상무위원 앞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쩌민이 최고실권자 덩샤오핑으로부터 군사위 주석직을 넘겨받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오늘, 역사는 반복됐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장쩌민 군사위 주석의 사직서를 받은 것이다. 후는 곧바로 군사위 주석에 취임해 명실공히 당(총서기)ㆍ정(국가주석)ㆍ군(군사위 주석)의 전권을 거머쥐게 됐다.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권력교체 과정은 이처럼 사직서 첫 문장까지 같을 정도유사하게 진행됐다. 특히 덩샤오핑이 군사위 주석직을 다른 직책을 물려준 뒤 2년동안 유지한 전례도 장쩌민이 그대로 답습했다. 덩은 1987년 정치국 상무위원과 지금은 없어진 기구인 중앙고문위원회 주임에서물러났지만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그대로 유지했다. 2년이 지난 후 1989년 6ㆍ4 톈안먼사태가 있었고 덩샤오핑은 그 해 11월 13기 5중전회를 통해 마침내 군사위 주석직을 떠난다. 2년의 시차를 둔 것은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과거 공산당 만고의 진리 때문이기도 했지만 새 지도부에 경험을 전수해주는 시간을 2년으로 잡은 것. 장쩌민의 이번 사임 절차도 덩샤오핑이 만들어놓은 제도에 따라 진행됐다. . 장은 지난 2002년 제16기 전국대표대회(16大)를 통해 총서기직에서 물러났지만군사위 주석직은 유지했다. 역시 2년 간의 경험 전수기가 지난 후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이에 따라 중국 최고 지도자의 임기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종신제'에서덩샤오핑의 '제도화', 장쩌민의 '제도 준수'라는 틀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권력교체과정이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우선 군사위 주석으로서덩샤오핑과 장쩌민의 위상은 현격한 차이기 있었다. 과거 덩샤오핑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했을 때만 해도 이 자리는 국가주석이나 총서기직을 능가하는 사실상의 최고위직으로 통했다. 그러나 경제 개혁과 개방이 진전된 장쩌민 시대에는 '정권은 더 이상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군사위 주석의 파워가 상당부분 제한됐다. 전문가들은 덩샤오핑이 2년 간 막후 실세 역할을 했다면 장쩌민의 '2년'은 막후조정자에 가까웠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직 이양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이 중국의 정책변화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타당성이 결여된 분석으로 보인다. 덩샤오핑 시대에비하면 군사위 주석의 실권이 이미 큰 폭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다. 결국 후진타오의 위상이 당ㆍ정 최고 책임자에서 당ㆍ정ㆍ군 1인자로 바뀌었다고 해서 대내외 정책이 바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앞으로 약 8년 후로 예상되는 후진타오의 이임 시기가 되면 군사위 주석직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자리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전임자들과 같은 '순차 방식'(총서기→국가주석→군사위 주석)이 아닌 '동시 방식'의 은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이다. (상하이=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