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이 채 가시지 않은 체육관 안에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의 시체들이 수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 러시아 남부 북(北)오세티야 공화국 인질극은 3일 오후 러시아 특수부대의 진압작전 강행으로 발생 52시간만에 종결됐으나 사망자가 최소 200명을 넘는 등 엄청난사상자를 발생시켜 '후폭풍'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특히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입을 통해 인질극이 벌어진 초등학교 체육관과 운동장 등 현장의 참상이 전해지면서 러시아가 인질로 잡힌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생명을 도외시한 채 테러범 진압에만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정부는 납치범들의 테러행위에 초점을 맞추며 러시아 정부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혔지만 세계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강경일변도의 대응에대한 비판론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진압작전 = 러시아 특수부대 요원은 이날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6시) 큰 폭발음과 총격전 속에 학교에 진입, 인질사태 진압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번 진압작전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특수부대의 진압작전 시작 직전까지만 해도 북오세티야측은 친 체첸계 인사인 아슬람벡 아슬라하노프가 협상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 학교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고 이 와중에 40여명의 여성과 어린이가 인질극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이 과정에서 체첸 독립과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하던 인질범과 특수부대원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하며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인질로 잡혀있던 반나체 상태의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은학교 건물 밖으로 뛰어 나왔으며, 학교 밖에 나와 있던 친척들은 폭발음과 총성이이어지자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진압작전은 10시간여 만에 종결됐다. 러시아 보안군 대변인은 진압작전 개시 10시간만인 4일 새벽 작전종료를 선언했다. 이번 초등학교 인질극을 진압한 러시아 특수부대는 대(對)테러 임무를 전담하는`알파부대'와 `오몬부대'로 알려졌다. 알파부대는 연방보안국(FSB) 차장의 지휘를 받고 있으며, 오몬부대는 내무부 산하 기관으로 한국의 경찰특공대와 유사하다. 알파부대는 95년 10월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현대그룹 연수생 버스인질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상자 급증 = 각국 언론들은 인질의 안전에 대한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혈진압이 강행됨에 따라 피해가 상당했다고 전했다. 이타르타스와 인테르팍스 등 현지 언론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200명 이상이총격으로 사망했으며 어린이 259명을 포함해 704명이 부상해 병원으로 후송됐다고보도했다. 부상자 가운데 200여명은 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으나 90여명은 위독해 사망자는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영국 ITV의 현장 취재 기자는 학교 체육관에 들어갔던 동료 카메라맨이 100구이상의 시신이 놓여있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이 방송의 줄리안 매니욘 기자는 "범인들이 설치한 폭발물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체육관 바닥에 수많은 시신이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진압과정에서 인질범 27명이 사살됐으며 3명은 생포됐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학교 운동장과 학교 주변에서 이들의 사체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러시아 보안군이 인질들 틈에 끼어서 달아난 테러범 4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진압작전 적절성 논란 = 사태 초반 300여명으로 알려졌던 인질의 수가 사태가진행되면서 최대 1천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성급하게 진압작전을강행함에 따라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의장성명을 통해 인질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데 대해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국 육군공수특전단(SAS) 출신인 존 머칼리스는 "러시아 보안군이 이 작전에서원한 것은 어린이들 구출이라기 보다는 인질범 사살이었다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테러범들에 대한 또 하나의 냉혹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러시아 국민을 지지하며, 러시아 국민에게 이번사태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기도를 전한다"고 말했다고 BBC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서울=연합뉴스) choinal@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