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지표가 일제히 악화되면서 '경기 일시둔화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소비자신뢰지수가 급락하고 제조·주택부문 지표 역시 동반추락함에 따라 미국의 경기둔화세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8월의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날 경우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들어 엔 및 유로화 대비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지표 악화일색=최근에 발표된 미국의 경기지표는 말 그대로 악화일색이다. 미국의 민간경제연구소는 8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전달의 105.7에서 98.2로 급락했다고 31일 발표했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치(103.5)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향후 6개월에 대한 소비자낙관지수 역시 전달 105.3에서 96.6으로 추락했다. 컨퍼런스보드는 고유가와 고용시장 불안으로 미 경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자신감이 크게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셉 아베이트는 "소비자들 사이에 고유가가 영구화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조업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시카고 구매관리자협회지수(PMI)도 7월 64.7에서 57.3으로 추락한 것으로 이날 발표됐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자들의 자신감과 제조업 지표가 동시에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사이트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우드는 "제조업 활동이 올 들어 강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최근 들어선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발표된 7월 신규 주택판매는 전달 대비 6.4% 감소했고 최근 주간 신규실업수당 청구자는 태풍 등의 여파로 예상치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7월 비농업부문 일자리 수 증가도 3만2천개에 그쳐 올 들어 가장 적었다. 2분기 경제성장률도 당초 3.0%에서 2.8%로 하향수정됐다. 블룸버그통신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오는 10월 연례회의에서 올해와 내년도 미 경제 성장률을 하향조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금리인상 행진 주춤할 수도=지표 악화로 미 경제 낙관론이 약해지면서 금리인상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용 등 추가지표가 예상보다 악화될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오는 21일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동결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까지의 FRB 경기진단은 회복 중 일시둔화를 의미하는 '소프트 패치(soft patch)' 상태라는 것이지만 악화 신호들이 추가로 이어지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중 금리인상 여부는 3일 발표되는 8월 고용지표가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미 경기에 대한 낙관론이 식으면서 달러화가치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화가치는 전일 유로당 1.2048달러에서 유로당 1.2181달러로 하락했다. 이날 낙폭은 지난달 6일 이래 최대다. 7월 말 달러당 1백12엔에 육박했던 엔화 대비 달러가치도 최근엔 1백9엔대를 위협받고 있다. 보스턴 소재 푸트남투자자문의 환율분석가 파커 킹은 "미국의 경기지표는 2분기 이후에도 둔화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로 인해 미국 자산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서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