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으로 10년간 투병하다 별세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다. 냉전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공급위주 경제정책을 펼쳐 미국경제를 회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또한 미국인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 '레이거노믹스'로 경제회생 =그는 공급위주 경제학으로 통하는 소위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감세정책으로 기업과 근로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레이거노믹스의 기본논리다. 감세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상대적으로 인플레 압력이 완화되고 세수가 늘어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토연구소장인 윌리엄 니스캐넌은 레이건 시대의 두가지 업적으로 지속적인 인플레 억제와 감세를 꼽았다.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대대적 감세정책 역시 레이거노믹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동서냉전 종식 발판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된 동서 간의 갈등을 종식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동서냉전 시기였던 1987년 당시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중거리 핵미사일을 제거하는 조약에 서명했다. 이는 냉전시대를 화해의 시대로 바꾸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의 냉전종식 카드는 군축보다는 군비확대를 통해 옛소련이나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압도적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그의 재임기간 중 미국의 빚이 급증한 것은 지나친 군비지출 확대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레이건의 지도력 하에 전세계는 두려움과 독재의 시기에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했다. ◆ 영화배우에서 대통령으로 =그는 구두 판매원이었던 존 레이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유레카대학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라디오방송국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5년간 일하다 1937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어 정계에 진출,67년부터 75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뒤 80년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영화배우 출신 제인 와이먼과 40년부터 8년간 결혼생활을 했으며, 52년 역시 배우였던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했다. ◆ 장례식은 11일 국장으로 =로스앤젤레스 소재 방송사인 CBS2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가 11일 워싱턴에서 국장으로 치러지고, 그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도서관'의 언덕에 묻히게 된다고 보도했다. CBS2는 조문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있도록 시신이 7,8일 레이건도서관에 안치된 뒤 비행기로 워싱턴으로 옮겨져 9,10일 이틀간 미 국회의사당 원형건물에 다시 안치된다며 이같이 전했다. 레이건 사무소측은 장례식 세부절차는 7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낸시 여사와 두 자녀인 론(로널드) 2세, 패티 데이비스, 입양아들인 마이클, 첫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모린이 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