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총선거를 사흘 앞둔 11일 아침(이하 현지시각) 출근시간에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폭탄테러로 최소 190여명이 사망하고 1천20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번 테러에 대한 세계 각국의 규탄성명이 잇따르는 가운데 스페인 정부는 사건발생 직후 이번 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에의한 `학살'로 규정했다가 경찰이 열차가 출발한 인근 지역의 승합차에서 뇌관과 코란 경전이 녹음된 아랍어 테이프를 발견한 이후 당초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이와 관련,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신문인 알-쿠드스 알-아라비는 자신들이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하는 알 카에다 명의의 e-메일을 받았다고 밝혔다. 폭탄테러는 9.11 테러 이후 최악의 참사이며, 유럽에서는 지난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팬암 제트기의 폭발로 270명의 사망한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낸 대형사고다. 포르투갈 정부는 테러 직후 스페인과의 국경지역, 이탈리아는 스페인 대사관과영사관, 스페인발 항공기에 대한 보안통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폭탄테러는 오전 7시40분부터 산타 에우게니아에서 아토차 역으로 이어지는 15㎞ 구간의 통근열차 선로를 따라 15분간에 걸쳐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프라도 박물관 남쪽에 있는 아토카 역은 지하철과 통근열차, 장거리열차 등이모두 다니는 마드리드의 중심축으로 출퇴근 시간대에 인파로 크게 붐비는 지역이다. 앙헬 아체베스 내무장관은 아토차 역에서 3개, 아토차 역 인근에서 4개, 산타에우게니아 역에서 1개, 포조 역에서 2개의 폭탄이 터지는 등 15분간 모두 10개의폭탄이 터졌고 3개는 당국이 폭발전에 발견돼 안전하게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테러로 192명이 숨지고 1천24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으나 중상자가많아 사망자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폭발후 역 구내의 시민들은 신발이나 가방 등 소지품을 닥치는대로 벗어 던지면서 현장을 벗어나려고 하는 바람에 구내 전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폭탄이 터진 열차는 휴지조각처럼 선로에 널브러져 있었고 열차역에는 팔다리가떨어져 나간 시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시신 주변에는 대답없는 휴대폰이 잇달아 울려댔고 피해자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거의 실성한 상태에서 시신을 얼굴을 들춰대고 있었다. 아토차 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대기중이었던 나니발 알타미라노(26)는 "사람들은 거의 공황상태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달리다 서로 엉키거나 밟히기도 했다"면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맞은편에서 열차가 올지 모르는데도 터널안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고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폭발 직후 버스가 앰뷸런스 역할을 하며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으며, 병원들은 시민들에게 헌혈을 당부했다. 현장 주변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얼굴과 손 등에 피가 묻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생존소식을 전했다. 최악의 사고가 발생한 엘 포조 역의 이중갑판 열차에서는 2개의 폭탄이 터져 70명이 숨졌으며 시체 1구는 열차 지붕까지 날아갔다고 소방서 관계자가 밝혔다. 또 에우게니아역의 폭발 현장에 있던 앰뷸런스 운전사는 "객차가 완전히 박살나열차 열차 하나가 완전히 두동강 났으며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시신이 플랫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가 당초 지목한 것처럼 이번 테러공격이 ETA의 소행이라면 수십년간주로 경찰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던 ETA의 전략이 아주 급진적이고 치명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것을 의미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아체베스 내무장관은 경찰이 승합차에서 7개의 뇌관과 테이프를 발견한뒤 "나는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 것을 지시했을 따름"이라며 사건발생 직후의 강경한 어조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승합차는 지난달 28일 마드리드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마드리드 북동부 25㎞ 지점의 알카라 데 헤나레스라는 마을에서 발견됐다. 이날 저녁 런던의 알-쿠드스 알-아라비에 전송된 e-메일은 아부 하프스 알-마스리 여단이라는 흐릿한 서명과 함께 "여단 소속의 암살단이 십자군 동맹의 한 기둥인스페인을 뚫었다"고 주장했다. 이 e-메일은 또 이번 공격으로 이슬람과 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동맹군이자 십자군세력인 스페인과의 묵은 원한이 일부 해소됐다는 내용과 함께 "아스나르, 미국은어디 있는가, 누가 당신을 보호해줄 것인가, 영국, 일본, 아니면 이탈리아?" 등의서방세력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스페인의 아스나르 총리는 이라크전과 관련해 미국의 확고한 지지자였으며 1천30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하기도 했다. ETA가 그동안 한번에 하나의 목표를 노리는 경향을 보인데 비해 이번 테러는 폭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고 주도면밀하게 준비가 됐다는 점도 이번 테러공격이 기존 ETA의 전술과 다른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바타수나당 지도자인 아르놀드 오테기는 이번 테러공격이 국내 반대여론을 무시한채 이라크전을 지원한 스페인을 언급하면서 아랍 저항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자신들은 공격을 감행하기 전 항상 전화로 사전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아체베스 장관도 실제로 이번 폭발 발생 전에 사전 경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9.11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지난해 10월 스페인을 언급하면서 미국 주도의 이라크 연합군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그러나 스페인 내무부는 조사결과 이번 테러공격에 사용된 폭탄은 ETA가 통상적으로 상용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일종이라고 밝혀 ETA가 이번 사건의 배후일 가능성을전혀 배제하고 않고 있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는 사건 직후 비상각의를 소집, 이번 테러의 범인들을 끝까지 추적할 방침임을 밝히는 한편 사흘간을 애도기간으로 선포했으며 14일로 예정되는 총선 선거유세에 나섰던 각 정당들도 선거운동을 일제히 중단하고 사건 배후세력을 규탄했다. 스페인 정부가 12일 전국적으로 ETA 규탄집회를 열 예정인 가운데 이날 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자발적인 집회가 열렸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이번 테러에 대해 잇따라 애도를 표시한 가운데 미국과 영국, 러시아는 테러에 대해 국제공조의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마드리드 AP.AFP=연합뉴스)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