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총선거를 사흘 앞둔 11일 아침(이하 현지시각) 출근시간에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발생한 동시다발테러로 적어도 186명이 사망하고 1천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테러에 대한 세계 각국의 규탄성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정부는 이번 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에 의한`학살'로 규정했으나 ETA는 즉각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폭탄테러는 아침 7시30분께 아토차 역에 도착하는 통근열차에서 처음 발생했는데, 이 역은 지하철과 통근열차, 장거리열차 등이 모두 다니는 마드리드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역으로 통근시간대에 인파로 크게 붐비는 곳이다. 이후 몇 분 간격을 두고 아토차로 이어지는 통근열차 노선 상의 역 두 곳에서도폭발이 일어나 열차와 플랫폼을 뒤흔들었다. 이와 관련, 앙헬 아체베스 내무장관은 마드리드 일원에 총 13개의 폭탄이 설치됐으며 이중 10개가 4-5분 간격을 두고 역과 열차 주변에서 폭발했다고 밝혔다. 아체베스 장관은 아토차 역에서 3개, 아토차 역 인근에서 4개, 산타 에우게니아역에서 1개, 포조 역에서 2개의 폭탄이 터졌으며 나머지 3개는 당국이 폭발 전에 발견돼 안전한 곳에서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아체베스 장관은 이번 테러로 173명 이상이 사망하고 6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으나 비공식 집계로는 186명이 사망하고 1천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부상자 중에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폭발 직후 버스가 앰뷸런스 역할을 하며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으며, 병원들은 시민들에게 헌혈을 당부했다. 현장 주변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얼굴과 손 등에피가 묻은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생존소식을 전했다. 아토차역에서 남동쪽으로 10㎞떨어진 산타 에우게니아역의 폭발 현장에 달려간앰뷸런스 운전사는 "열차 1량이 완전히 박살나 열차 전체가 완전히 두동강이 났으며시신이 플랫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의 배후에 대해 아체베스 장관은 이번에 발견된 폭발물들이 통상적으로 ETA가 테러에 사용해온 폭탄과 같은 유형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번 테러가 ETA의소행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대테러 소식통들도 이번 테러에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원격조정 폭탄이사용됐다면서 이런 유형의 폭발물은 ETA가 지금까지 테러에 사용해 왔던 것과 같은유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ETA의 정치조직으로 간주되고 있는 급진성향의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 바타수나당은 이번 테러는 ETA가 아니라 `아랍 저항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바타수나당 지도자인 아르놀드 오테기도 라디오 방송과의 회견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신들은 공격을 감행하기 전 항상 전화로 사전경고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아체베스 내무장관은 이번 폭발 발생 전에 사전 경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9.11테러를 자행한 알 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지난해 10월 스페인을 언급하면서 미국 주도의 이라크 연합군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는 사건 직후 비상각의를 소집,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14일로 예정되는 총선 선거유세에 나섰던 각 정당들은 선거운동을 일제히 중단하고 사건 배후세력을 규탄했다. 이번 선거에서 분리주의 갈등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나 집권여당인 국민당과 야당인 사회당 모두는 불법단체로 규정된 ETA와의 대화 자체를 배제하고 있는 입장이다. 한편 세계 각국 정상들은 이번 테러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 발생 직후 아스나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뜻을 전했다고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국경지역에 대한 보안조치를 강화하는 등 이번 테러가 자국 내 옛 바스크 지역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이번 테러를 강력히 규탄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테러 차단을 위한 국제공조의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으며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자유 세계가 단결해 테러리즘을 근절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의회의 패트 콕스 의장은 "스페인 국민과 스페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화될수 없는 공격"이라고 개탄했으며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유럽 민주주의의 원칙을 공격하는 잔학행위"라고 비난했다. 유럽의회는 희생자들을 위해 1분 간 묵념을갖기도 했다. 유럽연합(EU)순번제 의장국인 아일랜드의 버티 아헌 총리는 성명을 통해 "폭발물이 터진 시간을 감안할 때 이는 엄청난 파괴와 인명피해를 치밀하게 노린 것으로,이는 어떠한 정치적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이탈리아와 독일, 덴마크 정부 등도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규탄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스페인 교회당국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이번 사건을 혐오스런 테러행위라고 규탄하면서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제안했다. (마드리드 AP.AFP=연합뉴스) k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