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비켜갈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는 승자의 소속정당에 관계없이 차기 미 대통령은 예일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재선을 노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1968년 졸업반)과 존 케리 상원의원(1966년 졸업반) 모두 예일맨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 아버지 조지 부시의 대통령 등극을 신호탄으로 테이프를 끊은 예일대의 대선불패 행진은 빌 클린턴(92년, 96년), 조지 W 부시(2000)로 24년째 명맥을이어오고 있다. 또 예일대는 지난 32년간 졸업생을 대통령 또는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실적도 갖고 있다. 예일대의 성공스토리는 종종 아이비 리그의 경쟁자인 명문 하버드대가 `정치'쪽에서 잘나가던 황금기와 비교된다. 하버드대는 미국 건국 이후 1789년부터 1828년 사이에 치러진 11차례의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중 한쪽에 반드시 자기 학교출신의 후보를 배출했다. 그 당시만해도 하버드의 경쟁자는 남부 귀족들이 선호했던 프린스턴이었기 때문에 예일대는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예일대 최초의 대통령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1878년 졸업반)로 1908년에 하버드 출신인 테오도르 루스벨트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이후 예일대는 대선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1972년 대선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은 부통령 후보로 하버드대 출신의 토머스 이글톤을 골랐다가 나중에 예일대 출신인 사전트 슈라이버(1938년 졸업반)로 말을 바꿔탔다. 게리슨 넬슨 버몬트대 정치학 교수는 "바로 그 때가 하버드에서 예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상징적인 바통터치였다"고 상기시킨다. 맥거번과 슈라이버 조는 1972년 선거에서 물론 패했다. 그리고 4년 뒤 역시 예일법대를 나온 제럴드 포드 후보도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후 1980년 선거부터 지금까지 예일대는 다른 대학출신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예일대가 이처럼 정치의 명가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른바 `학력의 대물림'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예일대는 이미 1920년대에 아이비 리그 대학 가운데는 처음으로 졸업생들의 자녀를 사실상 그냥 받아들이는 제도를 도입했다. 학력 대물림은 부자들을 위한 일종의 할당제였다. 이같은 제도로 아들 부시 대통령은 고등학교 시절 변변치 못한 학생이었음에도불구하고 3대에 걸쳐 예일대생이 되는 가문의 영광을 실현할 수 있었다. 케리 상원의원도 2대 세습 예일맨이고,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사라진 하워드 딘도 정상적인 조건에서 겨뤘다면 예일문턱을 넘기 힘든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 대해 예일대는 공공에 대한 봉사정신의 전통, 엄격한 지적훈련 등이 하버드를 따돌릴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어쨌든 미국인들은 차기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에 표를 던지든, `불라 불라(Boola Boola)'라는 예일대 응원가를 알고 있는 후보를 뽑게된다는 사실에는아무런 변화가 없다. (워싱턴 불룸버그=연합뉴스)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