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3개 야당이 4일 차기 대통령 후보로 합의한 호르스트 쾰러 전(前)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5월23일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을 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대통령을 뽑는 연방총회 의석분포를 보면 야 3당 공동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일단 이변이 없는 한 기정사실로 보인다.

하원의원과 동일한 수의 지방정부 대표들로 구성된 연방총회 의석 1천206석의 가운데 기독교민주연합과 기독교사회연합이 543석, 자유민주당은 82석을 차지하고 있다.

야 3당 의석이 선출에 필요한 과반 보다 22석 많다.

그러나 독일 언론에 따르면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야권에서 22석 정도의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의 핵심은 야 3당과 집권 적녹연정의 후보 결정 과정에 이같은 이변 발생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기민련과 기사련은 그 동안 후보 선정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벌였으며 지난 2일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련 원내부총무를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민당과 하는 협상 과정에서 이틀 만에 쾰러 후보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기민련 내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인 롤란트 코흐 헤센주지사를 비롯해 상당수 기민련 지도부와 당원들이 반발했다.

당의 총의를 모은 후보에 대해 안겔라 메르헬 당수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소수당인 자민당 요구에 밀렸다는 것이다.

메르헬 당수와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사련 당수는 캐스팅 보트를 쥔 자민당이 쇼이블레 총무를 반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민련 일각에선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대통령을 국민직선제로 해야 된다는 주장도 한다.

음모론의 핵심 내용은 "차기 총선에 야권 총리 후보로 나가기를 원하는 메르헬 당수는 이번 기회에 당내 비판세력 중 하나인 쇼이블레 총무의 힘을 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기사련과 특히 자민당과 공조체제를 이번 기회에 확고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 자민당에 쉽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음모론 제기론자들은 또 그 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통령은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으며, 쇼이블레 총무가 거부됐을 경우에 대비한 기민련 내유력 여성 후보가 있었는데도 메르헬 당수가 이를 도외시했다고 보고 있다.

여성이 대통령이 나오면 차기 총리 후보는 남성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성인 메르헬 당수가 계산했다는 것이다.

이변 가능성을 주장하는 측은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방총회 내 의석 열세에도 불구하고 야3당 후보가 최종 결정되고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4일 아침 여성인 게지네슈반 유럽대학 총장을 여권 후보로 급박하게 발표한 것에 주목한다.

미국 대학을 방문하고 있던 슈반 총장은 일간 타게스슈피겔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일 아침에 야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게서 대통령 후보 추천을 통보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적녹연정이 야당측의 사정을 꿰뚫어 보고 적을 분열시키는 노림수를 발빠르게 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동안 후보감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슈반 총장은 야당에서도 거부감이 없는 인물이며 여성이어서 대항마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기민련 내에서는 이번 후보 선정 파동 이후 헬무트 콜 전 총리의 황태자로 불렸으나 정신이상자의 공격으로 휠체어 장애자가 됐다가 재기한 쇼이블레 총무에 대한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지도부에 대한 당 밑바닥 불만 정서가 일고 있다.

슈뢰더 총리로서는 야권의 분열과 비정치인 출신의 경제전문가인 쾰러 전 총재의 문제점을 부각하면 야권 이탈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계산할 수 있다.

설령 `작전의 1차 목표' 달성엔 실패해도 야당의 분열과 자기편의 결속에는 일정한 성과를거둘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독일 언론은 이번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을 정당 간 세력과 두뇌 싸움을 수준을 넘어서 마키아벨리즘식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질적 권력을 총리가 쥐는 의원내각제 하에서 권위가 생명인 국가의 최고수반 자리가 도를 넘는 정치싸움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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