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에서유대인 정착촌을 완전 철수하겠다고 2일 발표했다.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해온 `불도저' 총리가 광범위한 정착촌 철수 계획을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샤론 총리가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점령한 영토에서 이처럼 대규모 철수 계획을 밝힌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샤론 총리는 구체적 철수 일정을 밝히지 않고, 정착민들과 협의하겠다고 말했으나 7천500명의 정착민은 물론 이스라엘 정치권은 `혁명적' 발상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정착민들은 샤론 정권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 가자지구 전면 철수 계획 공개 샤론 총리는 이날 집권 리쿠드당 수뇌부와 비공개 회동을 갖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내 17개 유대인 정착촌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샤론 총리는 이에 앞서 일간 하아레츠 인터넷판과 가진 회견에서도 가자지구 정착촌에서 완전 철수하기 위한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의 17개 정착촌에는 7천500명의 이스라엘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샤론 총리는 자신의 정책을 강력히 비판해온 언론인 가운데 한명인 하아레츠의칼럼니스트 요엘 마르쿠스를 네게브 사막 농장으로 불러 정착촌 철수구상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문제를 유발하는 정착촌과 가자지구 정착촌 처럼 영원히 고수할 수 없는 지역에서 주민들을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 더이상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샤론 총리는 이어 리쿠드당 수뇌부 회동에서도 가자지구 정착촌들은 안보에 부담이 되며 "지속적인 마찰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샤론 총리는 그러나 정착촌 철수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시인하고 정착민들을 강제로 철수시키기 보다는 이들의 동의를 먼저 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의회의 승인을 구할 것이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도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 정착민.정치권 강력 반발 샤론 총리의 발언은 이스라엘 정치권을 깊은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리쿠드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각료들도 노골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가자지구 정착민들은 샤론 총리를 중도 퇴진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착민들은 샤론 총리가 철수를 강행할 경우 "민족주의 진영은 합법적인 수단으로 샤론 총리의 임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위협했다. 정착민들은 성명에서 또 샤론 총리가 "종전의 지각있는 입장으로 돌아갈 것과국민들에게 새로운 재앙을 안겨주지 말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샤론 총리 주재의 비공개 회의에 참석했던 리쿠드당 간부들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예치엘 하잔 의원은 "완전 충격 상태에 빠져있다"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총리가 "리쿠드당 당수가 아닌 노동당이나 메레츠당과 시누이당 등 야당 지도자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실반 샬롬 외무장관도 샤론 총리의 계획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이 문제는 내각과 크네세트(의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지적하고 "일방적 조치가폭력과 마찰을 줄이기는 커녕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샤론 총리의 발언이 신빙성이 결여돼 있다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사에브 에레카트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수석대표는 샤론 총리의 발언이이달 말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언론 플레이'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떠나려 한다며 이를 반대할 팔레스타인인은 한명도 없다"며 말이 아닌 실천을 촉구했다. 샤론 총리는 이날 야당이 의회에서 발의한 정부 불신임안 표결에서 가까스로 불신임을 면했다. 극우 연정 소속 의원들의 이탈로 정부 불신임안은 찬성 41대 반대 42표로 간신히 기각됐다. 이날 표결에 37명의 의원들이 기권표를 던지거나 불참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리쿠드당과 국민연합, 민족종교당 등 연정 소속 의원들이었다. ◆ 샤론총리 발언의 배경 샤론 총리는 지난 30년간 정착촌 운동을 주도해온 대표적 극우 지도자이다. 그가 야당 지도자 시절이던 1998년에 외친 "언덕을 장악하라"는 구호는 이스라엘 과격정착민들의 슬로건이 됐다. 샤론총리는 최근들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병력 철수와 정착촌 철거, 분리장벽 건설 등 `일방적 조치들'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이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방적 조치들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측근들은 일방적 조치의 착수 시기가 올 여름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샤론 총리는 그전에도 미국이 후원하는 단계적 평화안(로드맵)을 지지한다고 밝혀왔다. 로드맵에 따라 샤론 총리는 2001년 취임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신설한 모든 정착촌을 철거해야 한다. 국제법 상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샤론 총리의 입장 돌변을 부패 의혹과 관련한 경찰 수사에서관심을 돌리기 위한 술책으로 보고있다. 샤론 총리는 아들 길라드 샤론을 통해 한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있다. 지난 달 샤론 총리의 기소여부를 결정할 검찰총장이새로 임명됐다. 샤론 총리는 오는 5일 경찰의 재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스라엘 라디오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 국민의 절반이 샤론 총리가 뇌물수수 의혹으로 2007년까지 잔여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스라엘 정치분석가 하난 크리스탈도 언론 회견에서 샤론총리가 경찰 조사를중단시키기 위해 정부 해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샤론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이달말께 미국 방문을 희망하고 있다. 샤론 총리가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깜짝 발표'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