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 60억원.' 지난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한 탁신 시나왓 태국 총리(55)가 공약대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일때 붙은 현상금이다. 하지만 이는 마약범을 잡기위해 정부가 제시한 돈이 아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꺾기 위해 마약 마피아들이 탁신 총리의 목에 내건 돈이었다. 1년여만에 무려 3천명정도의 마약사범을 살해, 인권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으나 태국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마약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했다. '약속한 시간내 목표 달성'은 탁신 총리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이른바 '탁시노믹스'의 핵심이다. 기업인 출신의 탁신 총리는 국가도 기업 스타일로 경영한다는 점에서 CEO 총리로 불린다.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 CEO형 리더십의 특징은 현장과 효율중시. '이동 내각회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탁신 총리가 지난달 17일 전 각료들과 함께 완공을 앞둔 신공항 건설현장을 둘러본후 즉시 '2009년까지 활주로를 두개 더 건설하라'고 지시한게 단적인 예이다. 그는 국정운영 시스템도 기업식으로 바꿔 놓았다. CEO 주지사와 CEO 대사가 그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지배자로 군림했던 전국 75개주의 주지사들에게 CEO란 타이틀을 붙여줬다. 중앙정부와 협의한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면 예산을 더 지원하지만 미달하면 '해고'라는 뜻이다. 주지사들은 이제 탁신 총리가 CEO로 있는 태국주식회사의 소사장인 셈이다. 외국에 파견된 대사들에게도 수출증대와 외자유치 목표를 할당해 주고 목표달성에 실패하면 해고를 한다. 내각의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태국의 KDI격인 경제사회개발원의 아콤 텀피타야파이시트 정책기획 수석자문관은 "탁신 총리는 한마디로 경제현장을 잘 아는 비전있는 지도자"라며 "사석에서 늘 목표는 예상을 뛰어 넘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탁신 총리의 비전은 Dual Track(이중 성장틀), OTOP(한 마을 한 상품), TSE(Tiger Sleep Eat) 등 각종 신조어를 쏟아내며 태국을 '성장에 대한 믿음을 가진 나라'로 변화시키고 있다. '30바트 의료보험'도 그중 하나다. "믿음은 성공의 절반"이라는 탁신 총리는 서민들이 한달에 30바트(약 9백원)만 내면 의료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선거공약을 확실하게 이행,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샀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54)도 정치가 안정되자 경제 현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훈센 총리는 지난달 중순 한국 수자원공사가 진행중인 프놈펜 인근 타목저수지 관개공사에 직접 참석, 한국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공사의 사령탑격인 최병습 수자원공사 타목 프로젝트팀장은 "훈센 총리가 경제현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늘 TV에 나온다"며 "타목 저수지 방문도 총리가 직접 국민들에게 경제의식을 일깨워 주는 행사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안병우 전 국무조정실장을 경제정책자문관으로 영입,경제공부도 했다.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해온 장기 집권자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77). 지난해 11월 그가 권좌에서 물러날 때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가장 걱정했던 점은 '행동하는 리더십'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마하티르는 "지도자의 임무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줄곧 얘기해 왔고, 이를 몸소 실천했던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마하티르는 10년전 말레이시아를 'IT(정보기술) 허브'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한 뒤 자신의 총리 집무실부터 개조했다. 지문인식 출입문을 설치했고, 모든 전자기기는 '말레이시아 제품'으로 채웠다. 마하티르의 리더십이 '경제성장'이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랑'도 한몫 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기업"이라고 말해 왔다. 덕분에 말레이시아 기업인들은 더욱 신바람 나서 일할 수 있었다. 판 반 카이 총리(71)가 이끄는 베트남 행정부는 '기업 고충처리반'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모스크바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기업들이 경영상 애로사항을 호소하면 즉각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로 정평이 나있다. 최근 현지진출 외국투자기업들이 수출 소득에 대한 세금인하를 요청하자 광범위한 조세감면 제도를 내놓는 민첩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9월 판 반 카이 총리가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기업이었다. 며칠간 머무는 짧은 일정 중에도 SK텔레콤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삼성전자 포스코 두산중공업 등을 두루 돌며 '베트남 홍보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료조직과 국영기업부터 개혁의 칼을 들이 대겠다"며 "총리의 지도력을 믿고 투자해 달라"고 호소했다. NTT의 혼다 히로미츠 말레이시아 법인장은 "미래를 꿰뚫는 힘을 가진 국가 지도자가 있었기에 동남아 경제가 고속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며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도 국가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방콕(태국)=육동인 논설위원ㆍ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