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서두르고 있다. 양국은 1980년 단교한 지 24년만에 관계 정상화의 주요 걸림돌을 제거하는 조치에 나섰다. 이란 정부는 5일 안와르 사다트 전(前)이집트 대통령 암살범 이름을 딴 테헤란시내 도로를 개명하도록 시위원회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이란 정부는 레자 아세피외무부 대변인 명의의 서한을 테헤란 시위원회에 공식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헤란 시위원회는 6일 서한을 1차 검토한뒤 도로명 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에회부해 추가 검토하고, 시 전체위원회에서 표결로 최종 처리할 예정이다. 테헤란 시내의 칼리드 이슬람불리가(街)는 이란-이집트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아온 감정적 장애물이었다. 이집트 이슬람 급진 운동단체 자마아 이슬라미아 소속이었던 이슬람불리는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근교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던 사다트 당시 대통령을 시해했다. 이란 혁명지도부는 그를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에 반대한 `순교자'로 칭하고테헤란 중심가의 도로를 칼리드 이슬람불리가로 명명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양국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이 도로명을 바꾸도록 이란측에 요구해왔다. 이집트와 관계 정상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이란 정부도 도로 개명을 희망하고 있으나 강경파 자경단체들의 항의로 미뤄왔다. 이란 정부는 문제의 도로명을 모하마드 알-두라가(街)로 개명할 것을 테헤란시에 제의하고 있다. 알-두라는 2000년 9월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숨진 팔레스타인 소년으로, 아버지의 품 안에서 숨진 그의 모습은 TV로 아랍전역에 방송돼 팔레스타인인티파다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양국 관계는 1978년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집트가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이란 국왕에게 망명처를 제공하면서 급속히 악화됐다. 결국 이집트와 이스라엘이평화협정을 체결한 지 1년뒤인 1980년 양국간 외교관계가 단절됐다. 특히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집트가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양국은 최악의 관계에 빠져들었다. 양국은 1990년대 들어 무역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서 점진적 관계 개선을 시도했으며, 지난달에는 무바라크 대통령과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대통령이 제네바 유엔기술정상회의에서 회동하기에 이르렀다. 이란은 또 다음달 테헤란에서 열리는 D-8 (8개 개발도상국) 경제 정상회의에 무바라크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와 관련, 무바라크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란이 이슬람불리에 대한 공개 찬양을 중지하면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해 관계 정상화를모색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흐메드 마헤르 이집트 외무장관도 양국 관계단절의 빌미가 됐던 1979년의 이집트-이스라엘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은 "과거지사"에 불과하다며 양국이 이제는새롭게 관계를 증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란 관영 IRNA통신과의 회견에서 "캠프 데이비드협정은 과거의 일이며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계속거론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불라 라마잔자데 이란정부 대변인은 양국 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렇다고 관계가 당장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양국이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장애물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양국이 이미 관계 정상화에 바짝 다가섰음을 의미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