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직전 워싱턴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됨에 따라 미국인들은 '쇠고기를 완전히 익힐 것이냐,덜 익힐 것이냐'보다 한층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게 됐다. 연말연시인데도 '산타'라는 말보다 '광우'라는 말이 자주 들려와 외식할 때면 메뉴판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도 늘었다. 하지만 미국과 무역하는 외국 파트너들은 고민 하지 않고 미국 쇠고기에 대한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 정부와 산업계는 대책 마련에 급급하고,치킨집 간판에는 '닭고기를 많이 먹읍시다'란 간판이 내걸렸다. 물론 광우병에 걸린 소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이미 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홀스타인 젖소가 캐나다산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이 옳다면 인간광우병(vCJD)에 따른 인명 피해를 걱정할 필요는 크게 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통계와 대국민 홍보를 동원한다 해도 소비자 신뢰란 한번 떨어지면 원상 복구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며칠간 육식주의자들은 육류 가공업에 대한 적나라한 정보들을 식욕이 떨어질 만큼 들었고,채식주의자들까지 그 공격에 합세하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된 vCJD나,지난 몇년 사이 논란이 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에이즈 같은 질병들은 인간의 번영이 다른 종들과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스는 중국 광둥성 야생동물 시장에서,에이즈는 원숭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공통점은 새로운 질병이 발견될 때마다 우리의 식습관,성생활,놀이문화가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을 계기로 이번에는 식습관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해야할 때가 된 것일까? 1906년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이라는 책에는 그 당시 정육업에 대한 끔찍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 글은 한 산업의 단면을 통해 노동자 착취 문제를 고발하려 했지만,싱클레어 자신도 인정했듯 "대중의 마음을 겨냥하려다 실수로 위를 자극"하고 말았다. 이번 광우병 논란도 마찬가지로 쇠고기 처리를 둘러싼 윤리 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그 핵심인 과학적인 문제는 희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도덕 설교를 벌이려는 사람들에게 그런 유혹을 자제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과학에만 집중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vCJD라는 병을 일으키는 인자는 '소'나 '동물'이 아니라 감염된 단백질인 '프리온'이란 물질이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세계경제가 사스나 광우병 같은 전염병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항상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다. 수십억 달러 상당의 식육산업 뿐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초 연구에 더 많은 지원을 쏟아야 한다. 우리가 이같은 전염병 사태에서 얻어야하는 교훈은 후세대를 위해 더 많은 과학도를 육성하고 더욱 더 과학에 근거한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음에 외식할 때는 광우병보다도 비만이나 당뇨병이 우리의 건강을 훨씬 더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의학도들에게 가르치듯,흔한 것들은 항상 더 위험한 법이니까. ............................................................................ 이 글은 에티오피아 출신 에이즈 전문가인 에이브러햄 버기스 미국 텍사스기술대학 의학 교수가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1월1일자에 기고한 '광우와 기타 동물들'이라는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