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태아의 생명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태아를 인간 개체로 간주해 살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이 논란은 낙태권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10일 티-노 보씨(36)가 의료사고로 유산한 뒤 해당 의사를 상대로 과실치사 혐의로 제기한 소송에 대한 심리를 시작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보씨는 지난 91년 임신 6개월인 상태에서 리옹 소재 오텔-디외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보씨를 다른 환자로 착각한 의사의 실수로유산했다. 이날 병원에는 탄 반 보라는 비슷한 이름의 여성이 자궁 안에 설치한 장치 제거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불어가 서툰 보씨를 이 여성으로 착각한 의사는 보씨의 양수막을 손상시켰으며보씨는 결국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보씨는 프랑스 법원에 의사를 상대로 과실치사 소송을 제기했으며 의사가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3심에서 결국 무죄 선고를 받자 이사건을 다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프랑스 대법원은 임신부에서 분리되지 않은 태아는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현행 법을 이유로 태아를 숨지게 한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보씨측은 태어나지 않은 태아도 인간이라며 생명권을 보장한 유럽인권협약의 보호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있는 여성단체들은 태아의 생명권 인정이낙태권 부인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할 경우 낙태 수술은 물론 정자와 난자의 수정 후 착상을 막게 하는 일부 피임 방식도 위법 내지 살인 행위로 분류될 수 있다고내다봤다. 이에 앞서 프랑스에서는 최근 이른바 '의도하지 않은 유산' 불법화 논란이 제기됐다. 집권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은 지난달 말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태아가유산됐을 때 이를 범죄행위로 인정해 사고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가능토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가 여론의 반대로 이를 철회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극단적인 예를 들어 며느리가 과로 등으로유산했을 때 손자를 고대하고 있던 시부모가 며느리를 제소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없다며 이 법안의 부작용 우려를 제기했다. UMP와 법무부는 이에 대해 태아가 사고를 당하더라도 생명권이 인정되지 않아가해자 처벌이나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법률상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는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임신 후 특정 기간에 임신부의 건강이 위태롭거나 태아에 결함이 발견될 경우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현경숙특파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