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외곽의 사이타마현에 자리잡은 가와구치시는 최근 관내 초등학생 2만7,000여명에게 필수 휴대품을 하나씩 긴급히 빌려 주었다. 휴대품은 목에 걸고 다니도록 만들어진 방범 부저(벨)였다. 가와구치시가 개당 500엔에서 최고 3,000엔씩 하는 방범 부저를 부랴부랴 대규모로 단체 구입해 어린이들 목에 걸어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빈발하는 어린이 납치를 막기 위한 비상대책 차원이었다. 방범 부저를 대량으로 구입한 지자체는 가와구치시만이 아니었다. 인근의 다른 시ㆍ도 관내 초ㆍ중학생 전원의 목에 걸어준다며 9,500개의 방범 부저를 메이커에 긴급 발주했다. 이에 앞서 니가타현의 무라카미시, 후쿠시마현의 스가가와시 등 상당수 지자체들에서는 학교와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방범 부저 구입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여기저기서 부저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끈으로 본체를 묶은 후 목에 걸고 다니도록 만들어진 휴대형 방범 부저는 버튼을 누르면 100dB에 가까운 소리를 내도록 돼 있다. 바로 코앞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것과 비슷한 음량이다. 5~10cm 크기에 라이트 기능이 달린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기능, 고부가가치의 첨단상품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신변의 위험을 주위에 알리는 것이 부저 자체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방범 부저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 어린이 납치사건이 빈발해서다. 경제 불안을 반영하듯 생계형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일본에서는 최근 어린이들을 겨냥한 납치, 유괴 사건이 꼬리를 물면서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와구치시에서는 10월 이후 여자 어린이를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11건이나 일어나 시 당국이 황급히 부저를 구입하게 됐다. 사이타마현 후카다니시에서는 11월4일 등교하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젊은 남성이 칼로 찌르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 학부모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니가타현 무라카미시 또한 등교 중이던 여자 초ㆍ중학생을 노린 납치사건의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다. 시 당국과 학교가 방범 부저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도쿄 스기나미구에서 한 어린이가 부저를 울려 주변의 도움을 청한 후 위험을 벗어난 데서 비롯됐다. 외출한 어린이를 곁에서 동행하며 보호해주지 못하는 한 부저가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방범 부저를 만드는 메이커나 수입업체는 순식간에 대박을 터뜨렸다. 방범용품 전문회사인 요시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부저 주문량이 40% 이상 늘어나 생산라인을 풀가동 중이다. 도시바전지는 최근 수년간 방범 부저의 판매가 꾸준히 증가한 데 이어 올 들어 증가폭이 더욱 커졌다. 어린이 납치, 유괴나 여성을 노린 상해사건이 터지고 매스컴이 관련뉴스로 떠들썩할 때마다 주문이 크게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값싼 중국제를 수입 판매하는 업체들은 특히 더 바쁜 몸이 됐다. 9,500개를 주문받은 한 업체는 재고가 2,800개밖에 없어 물건을 다 대지 못했다. 이 업체는 중국에 증산을 요청해 놓고 있지만 공급이 워낙 달려 전량을 모두 납품하기까지 30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주문 후 2~3개월 지나야 물건을 줄 수 있다는 업체까지 나올 정도다. 일본방범협회측은 지난 97년 고베시에서 당시 14세의 소년이 어린이 2명을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방범 부저의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납치, 유괴 사건이 빈발하면서 성인 여성이 중심이었던 사용자도 초ㆍ중학생 등 저연령층의 어린이, 청소년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언론은 어린이들이 부저를 목에 걸고 등교하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전한 뒤 약자인 어린이를 노린 반사회적 범죄가 만들어준 이상 특수라며 씁쓸해 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