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벨벳혁명'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룩한 그루지야가 대통령 선거준비에 돌입하는 등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23일 퇴진한 지 하루만에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루지야 정정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순탄한 선거 과정을 거쳐 무혈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의 꽃이 제대로 피게 될지 여부로 옮아가고 있다. 특히 벌써부터 대권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45일내 대선 실시 = 그루지야 의회 의장이기도 한 니노 부르자나제 대통령 권한 대행은 24일 밤 전국에 중계된 TV 연설에서 22일 선포된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할 것이라면서 향후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루지야 헌법에 따르면 향후 45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지도록 돼 있어 늦어도내년 1월 초순 이전에는 대선이 실시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그루지야 의회는 25일 중 대선일을 확정한다. 부르자나제 권한대행은 또 모든 공무원과 시민들에게 질서회복에 동참할 것을촉구하고 비상사태 수습을 위한 24일 밤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하는 등 과도정부 출범을 구체화했다. ◇대권 후보 물망에 누가 오르나 = 현재 수면위로 떠오른 후보군은 4명으로 압축되지만 이번 무혈혁명을 주도한 사카쉬빌리(35) 국민행동당 당수와 부르자나제 대통령 권한대행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루지야 `386세대'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사카쉬빌리 당수는 24일 출마선언을했지만 부르자나제 권한대행은 출마의향을 밝히지 않았다. 부르자나제 대행은 지난해 12월 "아직은 중책을 맡을 준비가 돼 있지 않고, 훌륭한 대통령 후보들이 많다"며 향후 10년 안에 대선출마 계획이 없다고 천명해 놓은 상태. 이밖에 셰바르드나제 정부 시절 그루지야 서부 이메르티아 공화국의 공사를 지낸 테무르 샤시아쉬빌리(52)와 지난 95년과 2000년 대선에서 셰바르드나제와 경쟁했던 야당 지도자 줌베르 파티아쉬빌리(63)가 대권 도전 의지를 드러낸 상태다. ◇그루지야 안정은 자치공화국과 경제가 변수될 듯 = 이번 혁명을 성공시킨 주역인 사카쉬빌리 당수는 24일 질서회복과 모든 공무원들의 정상업무 복귀를 촉구하면서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무장봉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사카쉬빌리의 정적(政敵)으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야당 지도자아슬란 아바시제가 이끄는 그루지야내의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움직임이 가장 심상치않은 상황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아자르에서는 23일 밤 비상사태가 선포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아바시제의 과격 추종자들이 사카시빌리 주도의 혁명에 반발해 무장분리독립 운동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아바시제 민주부흥연대당 당수는 "불행히도 정권퇴진 운동을 주도한 지도자들이 아자르공화국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며 "진정으로 올바른 길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분석가들은 그루지야 차기 지도부가 피폐해진 경제재건과 부정부패 척결에성공하지 못하는 한 그루지야의 정정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루지야 주재 美상공회의소장인 파디 애즐리는 "그루지야를 피폐하게 만든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상태"라며 "새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할 과제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셰바르드나제 거취는 = 민중봉기로 축출된 후 독일 망명설이 나돌았던 비운의지도자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은 24일 그루지야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제2공영 ZDF TV는 이날 저녁 예고방송을 통해 셰바르드나제가 자사와 가진회견에서 "독일을 좋아하지만 내 조국은 그루지야이며,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독일측의 초청에는 감사하지만 독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밝혀 독일 망명설을 일축했다. 한편 셰바르드나제는 외부 세력이 야당 세력을 배후조종해 자신의 퇴진을 불러왔다는 음모론을 제기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타르-타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4일 "일부 외국 조직과 대사관들이 그루지야에서 정부 당국과의 투쟁을 유도함으로써 유고슬라비아 혁명의 전례를 활용했다"고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외국 조직과 대사관이 그루지야 사태에 개입했는 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적절한 때에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고후회했다. 셰바르드나제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미국의 금융업자 조지 소로스와 그가 운영하는 펀드가 그루지야 내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어 이번 발언이 소로스와 미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방세계 안도 = 유럽집행위원회는 24일 그루지야의 무혈혁명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자진 퇴진은 그루지야의 헌정질서가 회복되는 계기가 됐다"며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폭력을 피한 것을 환영했다. 미국은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그루지야 민주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부르자나제 대통령 권한대행과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사실 상그루지야 과도체제를 인정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부르자나제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와 동료들이 그루지야헌법에 따라 일을 진척시킬 것을 권고하면서 지원의사를 밝혔다고 바우처 대변인은덧붙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다소 우려의 반응을 나타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그루지야 정권 교체가 본래 동기와 다른방향으로 이뤄진 것에 우려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宮)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 축출을 주도하고 선동한 세력들은 국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셰바르드나제를 옹호하고 무혈혁명을 주도한 세력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길 바란다"고 말해 차기정권과의 관계개선 가능성을 열어놨다. (트빌리시 AP.이타르타스=연합뉴스)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