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장악으로 그루지야의 정정이 혼미속에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가 카프카스의 정치.경제적 전략요충지인 그루지야에서 영향력 확보를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미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해 정부와 야당간의 중재역을 자임하고 나섰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미국의 이익을압박하기 위해 그루지야행을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공산권 몰락이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루지야에서만큼은 양측간 국익의 충돌로 인해 냉전 스타일의 정면대결을 지속하고 있다. 양측은 이번 사태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여부가 그루지야내 영향력 유지에 큰변화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 500만명이 안되는 카프카스의 소국 그루지야가 두 열강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유는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인. 워싱턴에 있는 닉슨 센터의 그루지야 문제 전문가인 제이노 배런 국제안보.에너지 담당 국장은 "그루지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요인은 석유. 그루지야 자체에는 유전이 없지만 서방의 석유회사들이 앞다퉈 유전을 개발하고 있는 인근 카스피해의 석유를 수출하기 위한 주요 통로이다. 전문가들은 석유 수출로를 확보하는 것이 곧 석유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히고있다. 이에 따라 일부 관측통들은 현재 상황을 19세기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이 인도로 가는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싸움을 벌였던 소위 "큰 게임(GreatGame)'과 비교하기도 한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에 영향력 행사를 위한 강력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그루지야 북부와 남부에는 소련 시절의 군 기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러시아는 이 기지의철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또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해 그루지야의 에너지 수요중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고 러시아가 지원하는 분리주의자들이 그루지야로부터의 분리에 성공한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 등 2개 지역을 사실상 수중에 두고 있다. 미국도 그루지야에 나름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그루지야에 있어 양자차원의 최대 지원국으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정부의 파산을 막은 일등공신이다. 미국은 또 해병대 군사교관들이 그루지야군을 지원하고 있고 휴이 헬기 6대를 제공하는 군사적 지원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근 수년간 그루지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조금씩 잠식해왔다. 소련 외무장관 시절 개혁적인 정책으로 서방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집권초 러시아와 마찰을 빚으면서 미국과 긴밀한 유대를 지속했으나 최근 1년사이에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주창하는 아자라 지역 지도자 아슬란 아바쉬제와 동맹을 맺었다. 배런 국장은 현재의 그루지야 위기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관심이 전혀 이상할것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양측은 모두 안정을 원하지만 러시아가 원하는방향과 미국의 원하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의 경우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위기 해소를 위해 야당측에 양보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렇게 되면 미국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했던 미하일 사카쉬빌리 국민행동당 당수가 이끄는 친서방 야당이 오는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런 국장에 따르면 이바노프 장관은 이에 반해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측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측의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경우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이번 위기상황을 타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친러시아파인 아바쉬제가 권력의 핵심으로 이동하면서 그루지야가 러시아쪽으로 더욱 밀착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빌리시 AFP=연합뉴스)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