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명문대학의 하나인 예일대 법대 학장에 이 대학 교수로 있는 한국계 미국인 고홍주씨(48·미국명 해럴드 고)가 선임됐다. 고 교수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법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내 한국계 미국인으로선 미 행정부에서 최고위직까지 올라갔던 인물이다.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은 "내년 7월 퇴임하는 앤서니 크론먼 현 법대 학장의 뒤를 이어 임기 5년의 신임 학장에 인권 및 국제법 전문가인 고 교수를 임명한다"고 5일 발표했다. 레빈 총장은 "고 교수를 차기 학장으로 선택한 것은 예일 법대 교수와 학생,직원 모두의 절대적 총의"라면서 "그는 법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 가운데 한명이며 법대의 임무에 헌신하고 있는 분"이라고 밝혔다. 고 교수는 임명 통보를 받은 뒤 성명을 통해 "세계 선두에 있는 법대 학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영광"이라며 "내가 사랑하는 이 학교를 새로운 세계화의 세기로 이끌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예일대 학보인 예일 데일리 뉴스는 고 교수가 신진 교수의 영입과 진정한 세계화를 차기 학장으로서 추진할 역점 사업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하버드대를 거쳐 옥스퍼드와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해리 블랙먼 대법관 서기,법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현재 예일 법대의 제라드 앤드 버니스 라트로브 스미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 아시아계 미국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1백명에 꼽혔다. 저서로는 지적 장애인들의 인권,초국가적 비즈니스 문제,미국 정치과학협회에서 미국 대통령학에 관해 가장 우수한 책으로 선정한 국가안보헌법 등 다수가 있다. 지금은 특정 국가가 왜 국제법을 지키거나 위반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예일대가 있는 뉴헤이븐 법률지원협회의 변호사인 부인 메리 크리스티 피셔와의 사이에 자녀 둘을 두고 있다. 고씨의 친형인 고경주씨(51·미국명 하워드 고)는 하버드대학의 공공보건대 부학장으로 재직중이어서 형제가 모두 미국 최고 명문대학의 주요 보직을 맡게 됐다. 실제 고 교수 가족은 8명에 박사학위만 12개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 집안이다. 미 교육부에서조차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고 교수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친 고(故) 고광림씨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씨는 주미 한국대사관의 외교관으로 재직하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앞날이 보장된 길을 버리고 이국땅의 망명객이 된다. 5·16 쿠데타가 자신의 신념인 '민주주의와 인권'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고 교수도 평생 인권문제에 매달리는 법학자로 성장했고 마침내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보스턴대 사회학 및 인류학 박사인 모친 전혜성씨는 개인주의적인 미국사회에서 아이들을 철저히 한국식으로 가르쳤다. 전씨는 가족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 식사를 같이 하는 것과 저녁에는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는 2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고 교수는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한국적 가족주의가 미국에서도 성공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 시절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인 이민자 1세대는 경제적인 성공을 이뤄냈고 2세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일군 경제적 성공과 희생을 바탕으로 20년 안에 한국계 고위공직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