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농민, 노동자의 반(反)정부 시위가 14일 계엄령 하에서도 3일째 계속되면서 진압 경찰 및 군병력들과 무력 충돌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생필품 공급이 차단된 수도 라파스는 도시기능이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현지 인권단체는 이날 라파스 인근 중소기업 밀집 산업도시인 엘알토에서 최소한 한 명의 노동자가 숨졌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주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 수는 모두 53명으로 늘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날 수천명의 노동자, 농민들은 라파스를 비롯해 엘알토에서 가두행진 시위를 벌이면서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탱크 수십대가 라파스의 대통령궁 주위를 둘러싼 가운데 이 곳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지역까지 진출한 시위자들은 산체스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위협하며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자들은 산체스 대통령의 사저로 침입을 시도했으나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해산됐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산체스 대통령은 하야 요구를 계속 거부하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 핵심정치인들은 이날 더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하야가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서 산체스 대통령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또한 이날 산체스 대통령과 회담한 `새 공화국 운동' 지도자 만프레드 레예스비야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해결책이 대통령의 하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도 라파스 지역은 현재 시위대와 진압 경찰 간의 무력충돌에다 수주째 이어진 생필품 및 연료 공급 중단이 계속되면서 약탈 행위가 자행되는 가운데 도시 전체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특히 시위대가 곡괭이로 도로를 파헤치고 주요 지점의 차량통행을 막기 위해 보도블록을 곳곳에 쌓아두면서 이동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 교사와 수송업계 노동자들도 파업을 벌이고 있으며, 국제공항은 3일째 완전 폐쇄됐다. 또한 엘알토부터 라파스까지 이르는 거리에는 반정부 시위대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산소 부족 등으로 인해 라파스의병원에서 아기 3명이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라파스 인근 지역으로 여행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볼리비아의) 치안상황이 최근 며칠사이 극도로 악화됐다"면서 "우리는 자국민들에게 라파스 인근 지역으로 여행하지말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인권단체 `영원한 인권의회'는 병원의 사상자 통계를 종합해 볼때 13일에만 최소한 14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그룹을 이끄는 최고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는 "이같이 대량학살 사태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산체스 대통령과 그의 내각이며, 이들은 학살자와 다름 없다"고 정부를 강력 비난했다. 광산업계의 백만장자 기업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산체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남미에서 매장량이 많은 천연가스를 외국에 수출하면 연간 15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과 가난한 원주민들은 과거에도 국영기업의 매각 사례처럼 이번에도 경제적 혜택은 자신들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더욱이 칠레를 통해 천연가스를 미국과 멕시코로 수출한다는 정부 계획은 반정부 시위를 더욱 촉발했다. 볼리비아에서는 1879년 칠레와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해안선을 잃고 볼리비아가 내륙국이 됐다는 점에서 칠레에 대한 반감이 아직도 강한 상태다. 앞서 산체스 대통령은 자신도 페루의 항구를 통해 가스를 수출하는 것을 더 원하고 있으나, 기술 및 경제적 요소를 감안하면 칠레를 통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입장을 인정했다. 이번 소요사태로 현재 사업이 불투명해진, LNG 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는 총 투자 규모가 60억달러에 달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스페인의 석유.가스그룹 레스폴 YPF를 비롯해 브리티시 가스, 판 아메리카 에너지 등이 '퍼시픽 LNG'사업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판 아메리카 에너지는 영국 석 메이저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아르헨티나의 브리다스(Bridas)사로 구성돼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레스폴 그룹은 볼리비아에서 하는 LNG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52조3천억 입방 피트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산체스 대통령의 마약근절 정책에 반발한 코카 잎 재배 농민들과 수송업계 노동자들이 이번 주부터 반정부 시위에 합류한다고 밝혀 이번 사태가 조만간 수습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