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3일 `미국에 반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강조하는 등 독일 정부가 독자적 외교 노선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간접적이면서도 매우 분명하게 밝혔다. 슈뢰더 총리는 이날 동독지역 막데부르크시에서 독일 각계 인사와 외교사절 등 1천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통일 13주년 기념식 연설을 통해 등 2차대전이후 미국에 느껴온 역사적 채무감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 연설에서 "독일은 서방 동맹의 모든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2차대전 이후 오랫 동안 정당화된 역사적 필요성에 더는 구속감을 느끼지 않는 것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통일 이후 13년의 세월은 한편으론 독일의 독자적 주권 행사를 뜻한다"면서 "경제적.군사적으로 국제사회의 의무들을 이행할 태세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에티오피아에 독일군 9천명을 파병한 일 등 독일의 군사적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그러나 독일은 `과장된 국수주의'를 표출하지 않은 채 이런 군사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미국을 은근히 비판했다. 특히 슈뢰더 총리가 "독일은 다양한 외교적 현안들과 관련해 독자적 가치관과 이익에 바탕해 자기 입장을 고수해왔으며, 입장이 다를 경우 `아니다(Nein)'고 말하는 용기를 지녀왔다"고 말하자 기념식 참석자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슈뢰더 총리는 독일의 이러한 접근방식에 대해 지지하는 국가들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내에 뿐 아니라, 유엔 내에도 있음을 지난 주 유엔 총회 방문을 통해서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독일 통일과 관련한 미국의 도움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이는 유럽통합이라는 기본 틀 내에서 가능한 일이었으며,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개혁개방정책과 체코 등 동구권의 민주화운동의 덕택이 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통일 이전과 그리고 통일 이후 지난 13년 동안 독일은 동구권 민주주의 발흥을 지지해왔으며, 앞으로도 이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유대계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이날 기념행사 초청 강연을 통해 "평화주의는 테러리즘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책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며 슈뢰더 총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케르테스는 지난해 노벨상 수상 직후에도 나치와 같은 비인간적 독재 정권의 붕괴는 평화주의가 무력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면서 독일 정부의 이라크전 반대 입장을 비판했다. 유대인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케르테스는 자신의 나치 강제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체제와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작품들을 싸왔으며, 독일에서도 활동한 바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