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약한 달러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영국의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이 2일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잡지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통화가치를 절상하라며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난타하고 있지만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려는 이 같은 전략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약한 달러 정책 어떻게 표면화 됐나"=미국이 강한 달러 정책에서 약한 달러정책으로 선회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9월20일 두바이에서 회동한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보다 유연한 환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부터.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은 이 성명을 `획기적 변화'라고 격찬해 달러화의 급격한가치하락을 초래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를 새로 모색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아냈다. 지난주에는 미국의 전.현 행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관변 컨설팅회사인 `메들리 글로벌 어드바이저스'가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의도는 매우 진지한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 재무부의 소장파 핵심관료들이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게임을 벌이지 않을 것이므로)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기를바라고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고 있다. 미국 정부는 여전히 강한 달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강한 달러 정책이 최소한 중.단기적으로는 폐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엔 금융전문가가 없다"=강한 달러 정책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빌 클린턴 전 행정부 관계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사령탑으로 발탁된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은 재임기간 내내 미국 경제를 떠바치는 버팀목으로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해 왔다. 이런 루빈 전 재무장관이 강한 달러를 포기한 부시 행정부의 `우둔함'에 피를 토하는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부시 대통령 주변에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받을 만한 경제전문가가 없다. 스노 재무장관은 역시 기업가 출신인 데다 정치보좌관인 칼 로브 등과 같은 골수 정치인들만 가득해 경제논리가 힘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는 평가다.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이 두렵다"=부시 대통령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반드시 재선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선정국을 맞이한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일자리 창출 없는 경기회복'이다. 이를 타개하는 가장 손쉬운 방안은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 등 교역상대국들에 통화가치를 절상하라고 압박하고 중국산상품들을 대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법률을 도입하는 등 보호무역주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모든 논리는 지난 45년 간 미국 제조업 고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약한 달러는 세계경제 성장 저해"=중국과 일본 등을 대상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것은 `표심 몰이'에 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미국 자체의 성장기반을 잠식한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환율 절상 압력은 엔화의 강세에 대한 우려를 낳게 되고이는 결국 모든 국가의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통화 절상 압력의 중심에 있는 일본 조차도 장기침체 뒤 엔화 약세로 촉발된 경기회복 국면을 유지할 필요가 절실하다. 9월 들어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내다 판 엔화가 사상최대 규모인 4조5천억엔에 달한 것은 일본이 쉽사리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통화 가치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마찰은 또한 각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의 압력에 굴복하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실패한 마당에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세계 교역질서의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 될 것이다. ◇"약한 달러는 미국 경제에도 위험 요소"= 무역수지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5%에 이르는 미국 역시 약한 달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천문학적인 무역수지 적자는 그러나 매우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달러화 약세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대선정국에 접어든 부시 행정부가 단기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고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고 그 결과 1조7천억달러 어치의 미국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새롭고 정치논리에 물든 약한 달러 정책은 이들 아시아 국가들이 재무부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채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채권 가격은 폭락할 것이고 이자율은 인상될 수 밖에 없어 미국 경제가 부담해야할 금융비용이 급상승하는 최악의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부시 대통령에게 가까운 자리는 물론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 조차도 `국제 금융'을 이해하는 인물이 없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 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