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정치논리에 휘둘려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대체할 위령시설 건립문제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도(共同)통신이 13일 전한데 따르면 일본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새로운 위령시설 건립을 위해 건립조사비를 반영하려던 당초 계획을 철회했다. 일본 정부는 내달 집권 자민당의 총재선거와 가을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 등의 정치일정을 앞두고, 자민당 내에서 반대의견이 많은 새 위령시설 건립에 나서는것은 곤란하다고 판단, 이같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정치 논리에 따라 원칙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 대체시설 문제가 제기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취임 첫해인 재작년 야스쿠니를 전격 참배한 뒤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이 일자, 외빈이나 일반인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대체 위령 시설을 건립해 보라고 지시한게 발단이었다. 이를 계기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의 자문기관 형태로 그해 12월 '추도. 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시설 검토 간담회'가 발족한 바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3월 간담회측이 `무종교 추도시설' 건립을 제안하는 최종보고서를 내놨을 때 "내가 대체시설을 꼭 짓겠다"며 `공약준수 의지'를 밝혔고, 후쿠다 장관도 이라크전이 종료되면 일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체시설 건립 쪽으로 기울던 분위기는 그러나 9월 자민당 총재선거라는 정치일정의 벽에 부딪혀 더 이상의 진전이 어려운 상태에 봉착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재작년 4월 자민당 총재에 선출됐을 당시 일본 유족회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취임 이후 3차례에 걸쳐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할 수 밖에없었던 정치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군소파벌 출신인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당의 본류라는 하시모토파 등을 껴앉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대체시설 건립에 반대하는 하시모토파 등 당내 각 파벌의 입맛에 자신의 입장을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셈이다. 만일 고이즈미 총리가 대체시설 건립을 유보하는 전략으로 총리 연임에 성공한다면 내년에도 또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연합뉴스) 고승일특파원 ksi@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