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무대에서 룰라의 트레이드 마크는 당당함이다. 그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대국(大國)'의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실제 그들도 룰라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지난 6월20일 미국 백악관에서 있었던 부시와 룰라간 정상회담때의 일.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미국의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룰라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부시는 대(對)테러 전쟁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 부시의 전쟁 정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룰라는 양국 정상회담의 첫번째 의제를 전쟁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브라질의 현안인 기아퇴치가 우선이었고 룰라는 개발도상국의 기아문제는 선진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의 산물인 만큼 미국 등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세웠다. 결국 당일 정상회담은 부시가 먼저 브라질의 기아퇴치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룰라가 반테러 활동을 돕겠다는 화답으로 마무리됐다. 룰라는 지난 7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포미 제로(굶주림 제로)' 캠페인에서 이 얘기를 공개하면서 국제사회가 결코 브라질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아퇴치를 위한 룰라의 의제는 지난 10일 조르제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테러와 마약 밀거래를 제거할 수 없다"면서 "세계 곳곳에 있는 가난이라는 핵심 문제를 해결한다면 테러 퇴치에 있어 더욱 비중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룰라는 특히 브라질 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의 빈민들까지 구제대상에 올릴 것을 주장해 개도국의 맹주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인상도 주고 있다. 하지만 룰라 외교의 중심은 여전히 남미 지역이다. 룰라는 브라질을 남미의 명실상부한 중심 국가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한다. 경제회생 방안도 남미공동체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룰라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각국 정상들을 수시로 만난다. 지난달에는 네스토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과 만나 향후 90일내 중남미시장 통합계획을 마련한다는데 합의했다. 룰라는 "유럽연합(EU)에 맞서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견고한 무역블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해 미국이 주도하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는 일정한 선을 그었다. 브라질리아=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