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 중의 하나가 리더십과 발표력이다.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데 투입하는 시간보다 리더가 되기 위한 덕목이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쏟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다.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서도 프리젠테이션 능력이 강조된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부분의 수업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학기말 시험은 보통 자신이 연구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치러진다. 이런 교육 과정을 거친 때문인지 미국 기업들의 많은 CEO(최고 경영자)들은 연기자 같은 인상을 준다. 수십 수백명의 기자들이나 투자분석가들 앞에서 회사 내용이나 신제품을 능숙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쇼맨십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11일 휴렛팩커드의 신제품 설명회도 칼리 피오리나 회장 겸 CEO의 쇼 같았다. 회장이 직접 나서 20여분간 신제품을 내놓게 된 배경과 제품들의 특징을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처럼 여유만만하게 설명해 나갔다. 거물급 회장치고는 설명회장 입장이나 퇴장 의전은 간단했다. 하지만 설명회 내내 긴장감이나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회사의 비전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말을 함으로써 참석자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매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모터쇼에 가면 GM 포드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의 회장 겸 CEO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새로 출시될 자동차를 직접 설명하고 질문도 즉석에서 받는다. 회장이나 CEO들이 자기회사의 제품이나 판매 전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그 생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CEO, 집무실에 박혀 있기 보다는 소비자들과 직접 대화하려는 회장들, 스스로 회사 PR에 앞장서는 CEO. 피오리나 회장이 주도한 신제품 설명회장을 빠져 나오면서 한국에서도 그런 CEO와 회장들을 많이 볼 수 있길 기대해봤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