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8일 북.미 뉴욕접촉에서 북한으로부터 `핵재처리 완료'를 통보받고도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한 채 냉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집한 핵재처리 정보에 대해 진행중인 정밀 분석.평가 작업이끝나고 북한의 말대로 핵재처리가 완료됐다는 결론이 내려질 경우 미국의 대응은 지금과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북한의 핵재처리 완료는 핵무기 4-6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의미여서 북한이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판단할 수있는 중대사안이기때문이다. 이와 관련,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5일 "지금 평가작업을 벌이고있다"며 "북한은 과거에도 많은 주장을 했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 주장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해 북한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같은날 정례 브리핑에서 "폐연료봉 재처리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특별한 우려사항임을 지적한다"며 "폐연료봉 재처리는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 추출만을 위한 것이므로 그것 자체만으로도 북한이핵무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재처리 완료가 확인만 되면 북한의 `범죄'에 대한 `물증'을 확보한 셈이므로 수사를 끝내고 `사법처리'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7일 "핵재처리의 가장 뚜렷한 증거인 크립톤가스가 나왔다면 과학적 장비를 통해 휴전선 인근에서 포착할 수 있다"며 "실제로재처리가 완료됐다고 판단한다면 미국이 지금같은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폐연료봉 8천개를 모두 재처리하려면 현재 영변 시설을 24시간 완전가동해도 133일이 걸린다"며 북한 `자백'의 신빙성을 낮게 봤다.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핵재처리 때 크립톤 가스 방출을 완전 차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핵재처리 완료가 사실이 아니라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로선 북한이 '벼랑 끝' 상황을 연출, 미국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북.미대화의 교착상태를 깨뜨리자는 속셈에서 재처리 완료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덕민(尹德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어 자신들에게유리하게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재처리 문제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기때문에 미국이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은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특히 "북한의 재처리 완료 통보가 중국으로 하여금 뜨거운 입장이 돼북.미 중재에 더욱 열심히 뛰게 만든 측면이 있다"며 "미국도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라크 등과 달리 `재처리 완료'를 통보하며 핵보유 의도를 숨기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정세판단에 따라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성명 채택과대북경수로 공사 중단 강행은 물론 더나아가 본격적인 제재와 그이상의 절차에 착수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물론 북한의 벼랑끝 전략은 9월 위기설, 연말 위기설 등과 같이 한반도의 긴장이 급고조되는 것까지 계산에 넣었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