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통계청이 이달 초 발표한 6월중 실업자 수는 4백25만명으로 실업률이 10.2%에 달했다. 일을 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독일인 열 명중 한 명꼴로 일자리를 찾지못한채 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실업자가 많은 사회에서 흔히 눈에 띄는 거리의 부랑자를 독일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뒤스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등의 뒷거리에서 어쩌다 한 두명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한국의 외환위기 직후(98년2월 8.8%)보다 실업률이 더 높은 독일에서 그많은 실업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뒤스부르크 교외에서 식품점을 하고 있는 리하르트 뮐러씨는 "독일의 실업자들은 대부분 구직(求職) 노력을 접고 집에서 편안하게 지낸다"고 들려줬다. 굳이 일자리를 얻지 않더라도 '놀고 먹기에 충분한' 실업급여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경제연구소(DIW)의 폴커 마인하르트 공공부문담당 연구위원으로부터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인하르트씨는 "과거 근로소득이 얼마인지에 따라 실업자가 받는 금액이 달라진다"며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건 실업자에게 최소한의 문화생활까지 정부가 보장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실직을 하면 우선 실업급여(Arbeitslosengeld)가 지급된다. 일자리가 없거나 주당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사람이 지급 대상이다. 자녀가 한명 이상이면 실직 전 세후 순소득의 67%,자녀가 없으면 세후 순소득의 60%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실직 전 월평균 순소득이 2천유로(2백70여만원)면 실업급여로 1천2백∼1천3백40유로(1백62만∼1백81만원)를 받는다는 얘기다. 건강보험과 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성 부담금은 정부에서 대신 내준다. 실업급여를 주는 기간은 최단 6개월에서 최장 32개월(57세 이상)까지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나면 실업보조금(Arbeitslosenhilfe)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돈은 만65세까지 받을 수 있다. 실업보조금은 자녀가 한명 이상이면 세후 순소득의 57%,자녀가 없으면 53%다. 지급률에서 실업급여에 못미친다. 그러나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2.5배이고 고등교육은 물론이고 대학과 대학원 학비까지 무료라는 점을 감안하면,일을 전혀 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독일인들 사이에 "실업자는 괜찮은 직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독일에는 '단기급여손실보충'(Kurzarbeitergeld)이라는 독특한 제도도 있다. 회사에서 근로시간을 일시적으로 단축해 직원중 3분의1 이상이 월 급여의 10% 이상 손실을 보면 손실액의 60∼67%를 보상해주는 제도다. 기업에서 먼저 이 돈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뒤 노동청으로부터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에서 1년 이상 실직상태로 있는 사람은 지난 6월말 기준으로 1백49만6천명에 달한다. 전체 실업자의 35.1%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자리를 달라는 아우성이 불거져나올 만한데도 조용한 까닭이 쉽게 설명된다. 반면 실업자들에게 지급할 돈을 갹출해야 하는 기업과 취업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 전파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주도하고 있는 한스 티트마이어 전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세금과 사회부담금이 과중해지면서 기업인과 취업자들이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며 "실업자들을 일터로 나가게끔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백만명이 넘는 실업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기업과 취업자들은 얼마나 많은 세금과 사회보장성 부담금을 내고 있을까. 프랑크푸르트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소득구간별로 부담해야 하는 세금과 각종 부담금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월 2천유로를 받는 미혼(독신) 직원은 세금과 각종 부담금으로 7백25유로(36.3%)를 냈고,4천유로를 받는 사람은 1천8백64유로(46.6%),6천유로를 받는 사람은 3천6유로(50.1%)를 내고 있었다. 기혼자는 월 4천유로의 소득중 1천4백34유로(35.9%)를 세금과 사회보장성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가족수가 많을수록 내는 세금과 부담금은 줄어든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소득의 38.6%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여기에다 직원이 내는 사회보장성 부담금만큼 회사도 부담해야 한다. 사회보장성 부담금은 근로자와 회사가 절반씩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경이 사라지고 있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기업들이 감당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복지예산을 감당하기 어려워 빚을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독일 정부의 2001년 재정지출액 가운데 사회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4%에 달했다. 독일 정부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2조1천1백50억유로)의 3%를 넘겨 유럽연합(EU)이 정한 '안정성장협약'을 위반,징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비르기트 케른 독일 경제부 사회복지담당관은 "실업급여 기간을 단축하고 실업보조금 제도를 기초사회복지 제도로 흡수시키는 등 복지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좌파 사회민주당 정부마저도 더 이상 현 상태의 실업자 복지제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는 얘기다. 특별취재반=김호영·현승윤 안재석·김병언 기자 [ 한경.대한상의 공동기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