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 모양의 독일 국민차 폴크스바겐이 생산라인에서 사라진다. 1930년대 나치독일에서 설계된 폴크스바겐 딱정벌레 모델이 오는 10일을 기해 멕시코 푸에블라공장에서 마지막으로 단종을 맞게 되는 것이다. 총 2천150만대를 세상에 남긴 채. 폴크스바겐의 역사는 1934년 6월 22일 자동차 설계사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독일제국자동차산업연맹으로부터 '국민차(폴크스바겐)'를 만들어달라는 위탁을 받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셰는 2만 라이히스마르크를 받고 평균적 국민이 굴릴 수 있는 차를 설계하게 된다. 1년여만인 1935년 7월 3일 포르셰가 슈투트가르트의 차고문을 열자 그가 만든 모델은 생김새로 인해 즉각 화제가 됐다. 거개의 승용차들이 커다란 상자 모양이었던 시대에 포르셰의 작품은 자그마한 크기에 생김새도 특이했다. 생김새 때문에 이 차는 결국 '딱정벌레'란 별명을 얻게된 것. 그로부터 6개월 후 이 딱정벌레 차는 생산에 들어가게 됐다. 폴크스바겐은 똑같은 외모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시기와 명맥을 같이해 1930년대엔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의 상징으로, 1950년대엔 독일의 '경제기적'의 대들보로, 이어 1960년대엔 히피세대의 숭배대상으로 인기를 누려왔다. 생산이 시작된지 꼭 1년 후인 1936년 7월엔 엔진성능이 향상된 대형차 모델 'V3'가 나오고 이어 이듬해엔 또 다른 모델 'W3'가 선을 보였다. 그러나 독일에서 시판이 시작된 것은 1939년 2차대전 발발 이후였다. 1938년 5월 히틀러가 니더작센주 볼프스부르크에 세운 자동차공장에서였지만 그나마 군수품 지프를 생산해야 했던 관계로 딱정벌레차의 생산대수는 별로 많지 않았다. 포르셰의 첫 모델이 나온지 근 10년만인 1945년 5월 2차대전 말까지 생산된 폴크스바겐은 630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이 해 영국군이 니더작센주를 점령하면서 2만대 생산을 명령했으며 1년후 1만대가 쏟아져 나왔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는 1947년 8월 8일 처음으로 해외에 딱정벌레들이 팔렸다. 나치독일의 패망 이후 겨우 2년만에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에 그리고 이어 다른 유럽 이웃들에 자동차를 수출하기 시작했던 것. 1950년엔 328대를 시작으로 미국시장에 발을 디뎠다. 10년 후 폴크스바겐의 미국 판매는 절정에 달해 약 400만명이 폴크스바겐을 몰았고 이 차는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일종의 스타로 떠올랐다. 다른 제품과는 달리 폴크스바겐은 당시 서독 경제기적의 상징이었다. 수출이 붐을 이루면서 이 차를 만든 폴크스바겐사는 해양운수사업에도 진출, 1962-1972년 사이 80척 이상의 전세선단을 거느린 세계최대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은 몇 군데 딱정벌레 생산 및 조립공장을 운영해왔으나 꾸준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한군데씩 공장을 폐쇄하다 마지막으로 멕시코 푸에블라 한 군데만을 남겨두게 됐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의 생산도 줄어 지난 2-3개월 동안엔 겨우 50대에 불과해 인건비가 싼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수지를 맞추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딱정벌레차는 10일부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지만 세계의 무수한 팬들에 의해 여전한 인기를 누려 나갈 것이다. (볼프스부르크 dpa=연합뉴스) jk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