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시작된 200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전초전을 보면 대선주자들의 경선은 '돈 모으기 경쟁'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꺾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9명의 민주당 후보들이 벌이고 있는 경선도 모금 액수만으로 판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 언론은 6월30일로 2·4분기가 끝나자마자 경선주자들의 모금액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전국적인 지명도가 떨어졌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예상을 깨고 2·4분기 중 경선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7백50만달러를 모았다는 것이 정치 뉴스의 헤드라인이었다. 그 뒤를 이어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존 케리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이 6백만달러,변호사 출신인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이 5백만달러를 모금,선두그룹을 이루고 있다.경선주자들의 정치철학이나 정책비전에 대한 해설보다는 얼마나 돈을 모으고 있는지가 미국 언론의 최대 관심사다. 부시 대통령은 이들 민주당 경선주자들보다 늦게 재선 운동을 시작했지만 불과 6주만에 3천4백20만달러를 끌어모으는 괴력을 발휘했다. 모금액만으로 보면 민주당 경선주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전혀 위협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에서 한국 정치를 생각해본다. 국회의원 선거를 하려면 몇십억원이 들어간다는 말은 있지만 어느 의원이 후원자들로부터 얼마를 받아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대선도 마찬가지다.특정 대기업에서 후환이 두려워 양당 대통령 후보에게 많은 자금을 줬다는 루머만이 나돌 뿐이다. 그래서 한국에선 정치와 돈의 밀접한 관계가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미국에서도 돈 정치에 대한 비판이 거센 것은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은 기부금을 많이 낸 기업에 확실하게 떡고물을 챙겨 주고 있다. 이라크 경제재건 사업도 집권당과의 친소관계로 참여 여부가 결정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과 분명히 다른게 있다. 어떤 후원자가 어떤 후보에게 얼마를 주었는지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밝혀진다는 사실이다. 공개된 모금액 이외의 뒷돈 거래는 없다. 언론들이 대선 주자들의 선거자금 모금과정을 앞다퉈 보도해도 역겨운 냄새가 안나는 것은 모금 과정이 너무나도 투명하다는 점 때문이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