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미국 생활을 시작하던 지난 99년 가을 어느날.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숙제 때문에 끙끙댔다. '이집트 문명'에 대한 조사를 하는 내용이다. 세계 4대 문명 탐구의 일환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찾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숙제였다. '좋은 아빠'노릇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필요한 책을 찾아주기 위해 인근 공립도서관에 갔다. 사서에게 책을 요구하자 그녀는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누가 볼 책인가요." "아들 숙제를 위해 빌리려고 왔는데요…." "그럼 아들이 와야지 왜 아빠가 왔나요." "애가 아파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고 나오면서 속으로 너무나 창피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미국 초·중·고등학교 졸업시즌이다. 졸업식장에 가보면 학생수가 적어서인지 교장선생님들이 졸업생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평소 자주 만난 탓에 학부모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런 '부러운'교육환경도 선거 때마다 문제가 많다고 도마에 오른다. 11억달러를 투자하는 현대자동차 공장을 유치해 정말 '큰 건'을 한 앨라배마주 주지사도 바로 교육이슈가 불거지면서 지난 선거에서 낙선했을 정도다. 미국에서도 '자식 교육'이 유권자인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국의 공립교육은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다. 때문에 교육세를 많이 거둘 수 있는 부자 동네가 당연히 좋은 학군이 된다. 일부 타운에서는 주택소유자들이 납부하는 세금의 75%가량이 동네 학교로 들어갈 정도다. 생활수준에 따라 교육환경이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전문가가 아닌 기자로서는 한국과 미국 교육환경의 장·단점을 정확히 짚어 내기 힘들다. 그러나 요즘 본사로 발령난 주재원들의 절반 이상이 '자식 교육'을 이유로 사표를 던지거나,혼자만 귀국하는 '기러기'신세가 되곤 한다. 교육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수님'들과 교육공무원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한국의 교육환경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