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점잖고 위엄있는 용모의 미남 미국 배우 그레고리 펙이 11일밤 숨을 거두었다. 향년 87세로 타계한 펙은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스타 중 마지막 남은 인물로 '로마의 휴일'과 '케이프 피어(Cape Fear)', '스펠바운드(Spellbound)'와 1962년 오스카 최우수남우상에 빛나는 '앵무새 죽이기' 등 60여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의 대변인인 먼로 프리드먼은 12일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프랑스 태생의 베로니크 곁에서 매우 평화스럽게 숨졌다면서 "그는 베로니크의 손을 붙잡은 채 마치 잠들듯 스르르 눈을 감고 갔다"고 전했다. 프리드먼은 펙의 별세는 영화계에 큰 손실이라며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기념비였으며 전세계 영화의 시금석이었다"고 회상했다. 시원스런 용모와 우아하고 절도있는 말솜씨로 펙은 점잖고 용기있는 행동인의 이미지를 은막에 투사해주었다. 1944년 '영광의 날들'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계속스타로의 길을 질주, 5차례나 오스카 상 후보로 지명됐으며 맡은 역할도 놀랄만큼광범위하고 다양했다. '왕국의 열쇠'(1945)에서 신부역을 맡았는가 하면 '낮 12시'(1949)에서는 전쟁영웅역을, '건파이터'에선 서부의 사나이로, 또 '로마의 휴일'에선 로맨티스트역 등 다양한 역을 소화해냈다. '다윗과 밧세바'에서 맡았던 전설적 역할인 다윗왕 역도 위풍당당한 그의 풍채에 썩 어울리는 역이었다. 189㎝의 장신인 펙은 스크린에서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조용하고 위엄있는 면모를 잃지 않았다. 우호적인 이혼을 한차례 했을 뿐 한번도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맡은 역은 '올드 그링고(Old Gringo)'에서 제인 폰다와 함께 한 루이스 푸엔소역이었다. 펙은 영화배우로서의 역할 말고도 미국영화협회(AFI)의 창립멤버이기도 했고 민주당의 캘리포니아주지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1916년 4월 5일 캘리포니아주 라 졸라에서 에이레 출신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펙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펙은 첫 아내 그레타와 1942년 결혼, 세 아들을 두었으며 1954년 이혼 후 현재의 아내인 파리의 기자출신 베로니크 파사니와 재혼해 두 자녀를 얻었다. 두 자녀인앤소니와 세셀리아는 모두 배우다. 펙은 로스앤젤레스와 파리를 오가며 만년을 보냈는데 수년 전 다음 같은 말을 남겼었다. "나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죽음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죽음이 가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방해받지 않는다. 다만 진정으로 즐기는 일들을 할 뿐이다"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jk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