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걷다보면 왕푸징에 이르게 된다.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탓에 얼어붙었던 소비가 서서히 풀리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입구에는 축제 때나 봄직한 아치형 고무풍선이 얼마전에 설치됐다. "왕푸징에 어서오세요.마음놓고 사세요"를 뜻하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왕푸징을 가로지르는 보행로 양 옆 곳곳엔 음료와 생맥주 등을 파는 야외 판매점이 들어섰다. 예년과 다를 바 없는 왕푸징의 여름 풍경이다. 한 점원은 "왕푸징에선 매년 5월부터 야외 판매점이 문을 여는 데 올해엔 사스 때문에 한달 정도 늦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안백화점 등 대형 상점 입구 앞에 설치된 야외 판매대에도 의류 등을 고르는 고객들의 손길이 바쁘다. 철시했던 일부 백화점도 새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한 백화점이 재가동에 들어간 대형 TV 전광판에서 나오는 소리가 거리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왕푸징 거리에 마스크 등 사스용품을 파는 야외판매대만이 한 둘 있던 한달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어색할 만큼 이제 베이징 사람들에게 사스는 잔인한 봄날의 악몽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중국속 한국기업들도 사스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중국본사는 사스 때문에 중단한 길거리 판촉행사를 오는 15일께부터 재개하면서 카메라가 달린 새 GSM휴대폰을 내놓을 계획이다. LG전자 중국지주회사도 하루 4천대로 떨어졌던 에어컨 판매량이 7천5백대로 늘며 예년의 성수기 수준에 근접해감에따라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준비중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 공장도 최근 잔업을 재개했다.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달 간 뚝 끊겼던 시장개척단 행렬이 오는 24일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엠텍 등 7개 중소기업의 요청으로 중국 업체 30여개를 알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사스 덫에 걸렸던 중국경제가 상처를 서서히 치유하면서 다시 비상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