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이 도쿄에서 열릴 때마다 단골로 갖는 행사가 있다. 일본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협약 체결식이다. 한국의 관계부처 장관이 축하연설을 한 뒤 한국 일본의 관련 기업인이 협약서에 서명한다. 그리고 박수소리 속에 협약서를 교환하고 손을 잡는다. 서울에서 날아 온 장관과 관계 공무원들은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6일부터 시작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에도 투자협약 체결식은 어김없이 들어있다. 20분 동안 3건의 행사가 이어지게 돼 있다. 숨가쁜 일정 속에서도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 것은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이번에 체결되는 협약의 알맹이가 튼실하다고 보기 어렵다. 고용확대 등 외자유치의 1차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특정기업의 연구개발센터 설립이 주요 메뉴의 하나다. 또 현재 돌아가고 있는 공장의 라인 증설을 위한 신고도 행사에 포함돼 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용을 꿰맞춘 인상이다. 산업자원부는 무역불균형 시정 문제가 한·일 최대 이슈라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올들어서도 1∼4월 무역적자가 6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추세가 지속될 때 연말엔 사상최고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속 태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품교역에서 역조가 워낙 심하니 다른 부문에서라도 돈을 끌어들여 적자를 줄여 보자는 노력은 격려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투자협약 체결식과 실제 경제여건은 별개다. 아무리 그럴싸한 경제협력의 장을 만들고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어도 산업현장이 분규로 몸살을 앓고,툭하면 파업소식이 나오는 한 일본기업들은 돈보따리를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행사요? 준비하는 쪽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제는 스타일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일본기업들은 한국의 투자 환경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8년째 대일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일하는 어느 상사의 고참 주재원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지 않으냐며 과연 어느만큼 성과가 있을 지 모르겠다고 침을 놨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