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3일 독일 사회민주당 창당 140주년 기념식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시대에 맞게 바꿀 용기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민당 당수를 겸하는 슈뢰더 총리는 이날 당원들과 각국 사회.사민주의 정권 및 진보정당 관계자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조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하면서 당내 좌파와 노조 반발에 부닥친 자신의 경제.사회개혁 방안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슈뢰더 총리는 또 "보수 정당이나 신자유주의 뿐아니라 국제법의 권위 대신에 무력을 행사하는 자들도 사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 유엔을 무시한 채 군사력에 바탕한 일방주의적 정책을 펴는 미국을 우회적이면서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연설에서 슈뢰더 총리는 "사민당은 지난 140년 동안 자유와 연대, 사회적 정의라는 사민주의 근본 가치를 추구해왔으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밝힌 뒤 "그러나 이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사민당이 옳은 일을 실천하기 위해 바뀐 상황에 맞는 수단을 적용하는데 소홀하고 겁내는 잘못을 하기도 했다고 평가한 그는 그러나 사민당이 현상유지에만 매달렸다면 빛나는 성과를 이룩한 독일 최장수 정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민주의의 기본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때론 "고통스런 타협이 필요하다"면서 자신의 개혁안 `아젠다 2010'이, 사민당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사회복지와 노동자 권리를 일부 축소하는 것을 옹호했다. 슈뢰더 개혁안에 대해 집권 사민.녹색당 좌파와 노동계는 ▲해고자 보호 법규완화 ▲소득세율 인하 ▲실업수당 등 복지 감축 등은 당 기본 노선에 어긋나는 것이자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짐을 지우는 것이라며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개혁안의 주요 방향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책임을 늘리는 것이라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시민들이 자신의 생활을 운영하고 국가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모든 것을 자유 경쟁 시장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한다면서 "바로 이 점이 보수당이나 신자유주의와 우리가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민당이 독일의 낡은 구조를 그대로 두려는 측에 대해서도 똑같이 반대해야 한다며 "우리가 스스로 사회적 시장경제식 방법으로 자신을 현대화하지 않으면 통제되지 않는 시장의 힘에 의해 우리가 현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전직 사민당 당수들을 비롯한 주요 당원들은 물론 영국 노동당 당수인 토니 블레어 총리와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도 참석했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의 당내 정적이자 좌파 지도자로 최근 `아젠다 2010'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 오스카 라퐁텐 전 사민당수는 초대받지 못해 창당 140주년 기념행사와 슈뢰더 총리의 연설의 빛이 적지 않게 바랬다. 라퐁텐은 사민당 내에서 슈뢰더 보다 기반이 강했으며, 지난 98년 총선 당시 당수였으나 대중적 인기가 밀린다는 지적에 따라 슈뢰더에게 총리 후보직을 양보했으며 슈뢰더 정권 출범 수개월 뒤에 모든 공직에서 은퇴했다. 사민당은 지난 1863년 5월23일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주도해 만든 전독일노동자연맹 창설일을 당 창당일로 삼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