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출처를 둘러싸고 온갖 주장과 억측이 나돌고 있지만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전이된 것이라는 추측이 학계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그간 사스의 출처를 놓고 인공적으로 만든 세균이 고의나 실수로 누출됐다는 루머가 나돌았는가 하면 오랫동안 인체에 잠복해 있다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인간 고유의 질병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전염병학계에서는 사스가 중국의 동물 체내에서 인간에게 전염됐다는 추측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사스는 인간은 물론 소와 돼지, 닭과 같은가축에서 흔히 발견되는 코로나 바이러스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소재한 미 국립보건원(NIH)의 앤서니 파우치 전염병 국장은 동물 출처설을 가장 그럴듯한 학설로 본다고 말했다.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이른바 `동물원성(動物源性) 감염증(zoonosis)'의 메커니즘은 잘 알려져 있는 상태로, 동물이 오랜 세월을 두고 면역성을 갖춘 것과는 달리 새로운 숙주가 되는 인간은 면역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학계에서는 희귀 요리로 유명한 광둥성의 식품 시장에서 특정 동물 체내에 있던 사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바로 건너뛰었거나 인간과 가축들이 뒤섞여 사는 광둥성의 주거 환경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형성됐다는 두 가지 시각을 갖고 있다. 광둥성의 식품 시장에서는 쥐와 거북이, 뱀 등이 산 채로 거래되는가 하면 도축장을 거치지 않고 음식점에서 갓잡은 온갖 동물들의 고기를 판매하는 등 위생환경이 엉망 상태라는 것이다. 광둥성 식자재 시장이 출처라는 주장은 사스 환자가 지난해 11월 광둥성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중국 관리들의 말에서 뒷받침을 받고 있다. 방역 관계자들은 이 때문에 사스의 확산을 전후해 특정 동물의 죽음이 비정상적으로 발생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만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이 감염원이라면 사스 바이러스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와 왜 다른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인간과 잘 접촉하지 않는 동물이 출처라면 이 동물은 접촉 당시 엄청난 양의 바이러스를 방출해야 했을 것이라며 미심쩍다는 시각이다. 영국 레딩 대학의 이언 존스 박사나 미국 세인트 주드 아동의학병원의 로버트 웹스터 박사는 이보다는 광둥성처럼 인간과 가축이 가까운 거리에 밀도 높게 분포돼 있는 지역에서는 바이러스의 전이가 쉽다는 가설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웹스터 박사는 중국에서 과거에 다수의 인플루엔자(유행성독감)가 출현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플루엔자는 인간 외에 가금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염성 질병이다. 광둥성에서는 가금류와 돼지가 지근거리에서 사육되고 있어 이를테면 오리의 바이러스가 돼지에게 옮겼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돼지는 면역체계를 포함해 인간과 몇가지 비슷한 유전자적 특성을 갖고 있어 중간숙주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스 발생 이전에도 중국은 신종 바이러스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적이 있다. 1957년의 아시아독감, 1968년의 홍콩 독감은 광둥성에서 비롯됐고 심지어는 1918년 2천만명이 목숨을 잃은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라는 주장도 있다. 6년 전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도 광둥성의 오명을 확대했다. 홍콩 당국은 전염을 막기 위해 15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집단 도살했다. 물론 오리나 돼지 체내에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가 상당부분 파악돼 있는데도 사스 바이러스는 기존의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주장도 약점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자들은 광둥성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출현 빈도가 높긴 하지만 세계의 여타 지역에서도 동물원성 감염증의 사례는 적지 않다고 말한다. 에이즈의 출처에 대한 한 유력한 가설은 침팬지의 체내에 있던 바이러스가 피부접촉에 의해 인간에게로 전이됐다는 주장이다. 미국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모기에 의해 조류에서 인간에게로 전이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에서 집중 발생한 광우병은 소에게서 인간에게로 전염된 것이었다. 가까운 경우로는 최근에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조류 독감이 있다. 웹스터 박사는 동물원성감염증은 홍콩이나 중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