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리 샤를드골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가히 대화를 나누던 안내소 직원은 기자가 마중객 항공편 도착시간을 묻자 황급히 마스크를 했다. 이 직원의 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하지만 불쾌했다. 베트남을 여행한 프랑스인이 사망하면서 사스 공포는 동양인 기피증으로 번지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공항행 조차 꺼리고 있다. 동양인 승객을 태우게 될까 해서다. 한국 파리주재원 부인은 학교에서도 동양인 왕따 현상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 학우들이 점심 같이 먹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파리 10구 경찰서는 기침을 심하게 하는 중국소년을 몇시간 동안 구금해 물의를 일으켰다. 경찰은 소년을 종합병원에 인계한 후 대민업무를 완전 중단하고 방독작업을 하는 등 난리를 떨었다. 얼마전엔 파리공항을 출발,릴로 향하던 TGV에서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기침을 하자 승객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경찰과 소방의료대가 출동해 사스 감염자가 아님을 확인할 때까지 열차운행이 중단됐다. 파리 13구의 중국촌은 괴소문에 시달렸다. 사스 감염자가 상당수 있으나 이들이 불법 이민자라 숨어 산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13구 접근을 피하고 자동차로 통과할 때도 창문을 닫고 마스크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 장 프랑스와 마테이 보건부 장관은 중국촌을 직접 방문,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 동양인 기피 현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사스 예방조치의 일환으로 고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아시아학생 1백50여명을 영불해협의 와이트섬 캠프에 강제 격리했다. 스위스정부는 바젤 국제시계전시회에에 참가한 중국인 사업가의 입국을 금지해 논란을 빚었다. 사스가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을 볼 때,자국민 보호를 위한 예방 및 확산방지대책은 정부의 의무다. 동시에 국민들의 집단적 히스테리가 외국인 혐오증이란 전염병으로 악화되는 사태를 막는 것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유럽인들의 사스 공포가 동양인 혐오라는 또 다른 형태의 인종차별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