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를 다녀간 한국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한데 놀란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이를 분명하게 입증할 수 있어야만 다자채널을 통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파원들은 늘 들어온 얘기지만,처음 접한 의원들은 미국의 이같은 입장이 워낙 강경해 북한 핵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고 한다. 며칠전 딕 체니 부통령을 만났던 박관용 국회의장도 미국의 경직적인 태도에 놀랐다고 했다. 정·관계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고 돌아간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나 함승희 의원도 혀를 내둘렀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북한 핵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섬뜩했다고 했다. 특파원들이 제임스 켈리 차관보를 만났을 때도 그는 두가지를 분명히 했다. 하나는 핵 문제의 평화적해결과 북한의 선 핵포기였다. 이라크 전쟁이 사실상 끝난 상태여서 다음 공격 대상에 관한 논의가 분분했다. 켈리 차관보는 이를 의식한 듯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먼저 핵개발을 포기하고 이를 검증할 수 있어야만 대화가 시작된다는 기존 입장도 분명히 했다. 켈리 차관보가 작년 말 북한을 방문,핵개발 계획을 확인하면서 정리된 미국의 이같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오히려 강경해진 듯하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는 국가의 말로를 북한이 두 눈으로 확인,뭔가 교훈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그동안 외면해온 다자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발표,핵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풀리는 듯한 분위기다. 북한은 다자대화 참여의사 외에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한국 정부는 큰 진전이 있는 것처럼 낙관하는 모양이다. 핵문제는 북한이 얼마나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이 고집하는 핵 포기까지 가는데는 험난한 장애물이 수없이 깔려 있다. 미국은 변한 게 없다.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한마디에 낙관하지 않길 바란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