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문의 1면에 요즘 심심찮게 실리는 사진이 있다. '아버지의 팔에 안겨 전통의식을 구경하는 금발의 어린이(차이나데일리)' '만리장성에서 즐거워 하는 관광객(베이징 천바오)' 등 외국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도 아랑곳없이 중국을 찾는 외국인이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베이징 시내에 있는 강아오(港澳)호텔 중식당.점심시간인데도 3개 테이블만 차있을 뿐 썰렁하다. 이유를 묻자 "객실 손님이 줄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호텔 관계자는 "객실 점유율이 예년 이맘때면 80%였는데 지금은 20%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달 중 베이징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국제행사가 줄줄이 연기되면서 이같은 현상은 계속될 듯하다. 전세계 1백79개 국가 지도자급 인사들이 참석키로 돼 있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정상회의를 비롯해 세계경제포럼(WEF) 중국 비즈니스 정상회의 등이 무기연기됐다. 중국 정부도 '사스발 경제 악재'가 현실로 나타나자 대응조치에 나섰다. 지난 일요일 오전 베이징 시내를 도는 전철 순환선의 둥즈먼역.여성 역무원이 계단 난간을 소독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부터 매일 하루 세차례 전철역 구내 전체를 소독하기로 했다고 들려줬다. 물론 전철차량도 소독한다. 1급 질병억제 조치를 취한 베이징시는 열차역과 공항은 물론 유치원 학교 아파트 등도 이미 소독을 하고 있다. 버스정거장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사스 예방수칙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24시간 전화로 사스 상담을 해주는 핫라인도 개설됐다. 베이징시는 또 2천5백여명으로 구성된 사스 예방팀을 발족했다. 지도부도 바빠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주 토요일,사스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광둥성의 선전에서 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과 만나 사스 퇴치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같은 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베이징 유안(佑安) 병원에 찾아가 의료진을 격려했다. 중국 정부가 진작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