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프랑스, 독일 등 `반전 트리오'국가들은 이라크전 종결 이후 유엔이 재건 작업을 주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수용할 것을 미국에 촉구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저녁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후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푸틴 총리는 이날 1시간 동안 이뤄진 회담 종료 후 합동 기자회견에서 "반전 트리오 국가들의 입장은 불변이다. 현재 주된 역할은 이라크 국민 생활을 정상화하고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임무는 유엔 주도로 추진돼야 한다"고역설했다. 그는 또 "후세인 정권이 생존투쟁의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도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거나 사용할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슈뢰더 총리는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이후 들어설 과도정부는 유엔의 관리를받아야 하고, 미국은 이 원칙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 재건은 유엔의 우산 아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전을 앞두고 유엔의 승인 없는 연합군의 이라크 공격을 강력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집, 미국과 갈등을 빚었던 이들 3개국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정면 대립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 군은 막강한 점령군으로서 질서와 인도주의적 지원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며 최근 무정부 상태에서 만연하는 약탈행위를 막지 못한 데 대해 맹비난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의 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유엔만이그 임무를 맡을 수 있는 정통성을 갖고 있다"며 유엔의 역할 제한을 천명한 미국의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부시 대통령은 금주 초 "유엔은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중요 역할을 맡아야 한다.그러나 그 역할은 제한돼야 한다"고 밝혔고,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러시아와프랑스, 독일은 이라크 채무를 탕감함으로써 재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는 당초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참가할 계획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가 나중에 돌연 이를 취소했으며, 유엔의 주도적 역할에 찬성 입장을 보인 토니블레어 영국 총리는 회담 초청을 받고 수락하지 않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AP.AFP=연합뉴스)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