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에 의한 바그다드 함락으로 전쟁이 사실상 종결됨에 따라 세계 각국의 이목은 이라크 유전지대로 향하고 있다. 국제유가 안정과 이라크 재건사업 등 '포스트 이라크 특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이라크 원유생산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원유 매장량은 1천1백20억배럴로 사우디에 이어 세계 2위다. 따라서 이라크가 본격적으로 원유 생산을 시작할 경우 세계 석유시장의 판도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미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 "빠르면 3개월내 이라크의 원유 수출이 재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원유 생산량이 전쟁 발발 직전 수준(2백48만배럴)을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 정도가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9일 "이라크가 올해말께면 하루 3백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른 연간 2백억달러 상당의 수입은 전후 복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미 행정부는 늦어도 올해말께면 이라크 재건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걸프전 때 불탄 유전을 복구하는데 2년 이상 소요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내 이라크 유전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가 현행 배럴당 29달러(WTI 기준)선에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이런 이유에서다.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오는 24일 긴급회의를 갖고 생산쿼터 축소 등을 통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22달러선 아래로 급락하는 것을 막는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라크 석유생산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서는 몇가지 문제점들이 해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라크의 원유생산 시설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91년 걸프전으로 인한 파괴와 이라크 기술진들의 해외 이주 등에서 비롯됐다. 이후 12년간 계속된 유엔의 석유수출 제재 조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석유 생산시설을 유지.개발하는데 필요한 장비를 수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런던의 지구에너지연구센터는 취약해진 이라크 석유 생산시설을 현대화하는 데는 50억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마즈눈과 웨스트 쿠르나 등 취약한 상태에 있는 유전지대를 개발해 원유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20억달러 가량이 투자돼야 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라크 유전 개발을 둘러싼 각국의 주도권 다툼도 또 다른 걸림돌이다. 미국은 전쟁 종료 이전부터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미국은 점령세력으로서 석유를 팔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며 유전 개발사업을 독식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마크 몰러치 브라운 유엔개발계획 사무총장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없다면 미국 주도의 점령군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일상적인 행정결정만 내릴 수 있을 뿐 이라크 석유산업의 현대화 및 운영권 계약을 발주할 권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러시아 등도 "유엔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주도해야 한다"며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또 다시 유엔의 역할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유전 개발을 비롯한 이라크 전후 문제들을 처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