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과 영국 주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이뤄진 이번 전쟁은 한마디로 `적법성'이 결여됐다고 할 수 있지만 `정당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여지가 있다. 유엔 헌장과 관련 국제법, 국제 관행에 따른 `적법한 전쟁'은 침략을받았거나 임박한 위협에 직면해 벌이는 `자위' 차원의 전쟁과 `국제평화와 안보' 위협세력에 대해 안보리의 승인하에 벌이는 `응징' 차원의 전쟁이 포함된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테러단체와의 연계등으로 미국의 국가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전쟁의 적법성을 뒷받침할 논리는 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학자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미국도이런 점을 의식해 "국제법과 국제안보의 환경은 유엔 헌장이 논의되던 시점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의 정립을 요구해 이라크전쟁이 현 국제법의 테두리를 초월한 행위임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이 전쟁이 적법한 전쟁이 아니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는 반면에 정당한 전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과거 코소보 전쟁이나 아프가니탄 전쟁도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전쟁 당사국의 피해에 대한 결정적 증거도 부족했으나 세르비아 정권의 `인종청소'와 탈레반 정권의 `테러세력 비호'는 명백한 사실이었기때문에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를 반대해온 프랑스, 러시아, 독일과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 국가들은 물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엔 사찰단 책임자등 유엔 관계자들까지도 한결같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는 전쟁"이라고 지적해왔다. 또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이 이런 인식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쟁을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를 휩쓴 대규모 반전 시위의 물길을통해서도 잘 확인된다. 미국이 이번 전쟁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현재까지의 전쟁 진행 양상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앤-매리 슬로터미국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국제대학원장은 "미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거나 이라크 국민으로부터 `해방군'으로서 환영을 받는다면" 이러한 `사후 정당성'의 획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군은 아직까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이라크 민중으로부터 진정한 환영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라크 전쟁이 적법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것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적법한 권위로 이를 판정해줄 기관도 없고 미국의 `잘못'을 처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쟁의 불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는 유엔안보리를 들 수 있으나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보리 결정을 통해 전쟁의불법 결정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밖에 국제형사재판소(ICC), 또는 국제사법재판소(ICJ)등은 미국의 의사에 반해 이번 전쟁의 불법성을 판단할 현실적, 법적 권한이 없다. 코소보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이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전쟁의 정당성여부를 판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유엔에 이 전쟁의 정치적,법적 평가를 요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이 반대한다면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적법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논란에 크게 신경써지않아도 되는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국제사회나 국내의 여론조차 완전히 무시할수는 없다. 이미 독단적 외교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조지W.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다자주의 또는 국제주의를 얼마나 존중하는 지를 판단받게될 또하나의 계기는 전후 이라크 처리에 대한 논의다. 슬로터 원장은 이라크 전쟁이끝난후 "즉시 유엔으로 돌아가 이라크 재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라크에 대한 무력개입을 정당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