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7일 바그다드의 대통령궁과 정부 주요건물들을 장악했다는 보도와 관련, 아랍권은 대체로 실망을 표시하고 보도의 진위를의심하는 일반 대중과 향후 이라크 정부 구성과 중동 질서판도를 우려하는 각 정부의 입장이 묘한 대조를 보였다. 아랍 민중은 최근 이라크 농부가 소총으로 미군 헬기를 격추했다는 `신화'에 자긍심을 공유하며 이라크인의 저항에 강한 연대감을 표시해왔다. 아랍 각 정부의 자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연일 반전, 반미 시위가 아랍 각국 수도에서 벌어졌고 아랍지도자들의 친미 기회주의 정책을 성토해왔다. 또 이라크의 저항에 합류하기 위한아랍 자원병들이 속속 이라크로 떠나는 등 아랍권은 1960-1970년대 중동전쟁 이후가장 강력한 단합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일부터 계속되는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작전으로 마침내 이라크 정권의 상징인 대통령궁과 정부 주요 건물들이 속속 장악됐다는 보도에 아랍 민중은실망과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집트 방송들은 알-자지라 TV 화면을 받아 미군 병력과 탱크에 포위된 이라크대통령궁을 비쳐주었고, 바스라에서 벌어지는 영국군과 이라크 민병대의 전투상황도수시로 보도했다. 이집트 움마프레스의 중견 기자인 아흐메드 슈크리는 BBC 방송을 통해 바그다드상황을 듣고 처음에는 믿을수 없었지만 알-자지라 화면을 통해 사실임을 받아들이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와 사담 후세인 지도부가 쉽사리 수도를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바그다드 한복판에 미군 탱크가 등장한 사실에몹시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의 대표적 인권운동가이며 반전시위를 주도해온 아슈라프 엘-바유미는 며칠전 경찰에 연행되기 전 "이라크인들이 2주일만 더 버텨주면 승리할 수 있다"며 이라크의 마지막 항전을 독려하기도 했다. 아랍작가연맹의 알리 오클라 오스란 회장은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 발표를 "선전공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미군이 "일개 주권 국가에 대해 테러공격을 자행하고 있다"며 연합군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정부는 전날 아흐메드 마헤르 외무장관 성명을 통해 이라크의 향후 운명과 정부 구성은 이라크인이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우디 아라비아 언론들은 이날 미군의 이라크 장기 주둔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일간 알-자지라는 이라크 전쟁 종전후 미 군정이 바그다드에 들어설 경우 이는"점령"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향후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국민이 결정해야 하며 유엔이 전후 이라크 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아랍어 일간지 알-메디나도 미국이 이라크 무장해제와 후세인 정권 축출,민주주의 도입 등 종전의 약속을 모두 잊은 듯 미국인에 의해 이라크 통치 구상을공공연히 떠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리아의 파루크 알-샤라 외무장관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전쟁이 중동에 혼란을 조성할 것이라며 중동 평화 분위기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로비단체"에 의해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의 마르완 무아쉬르 외무장관도 종전후 새롭게 출범하는 이라크 정부는연합군의 강요가 아닌 이라크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특파원 barak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