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반체체 인사들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정책과 경제봉쇄로 앙숙지간인 미국과 쿠바가 최근 미국 망명을 목적으로 한 잇단 피랍사건으로 '불가사의한 동거체제'에 들어갔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두 차례의 항공기 납치사건에 이어 지난 2일 쿠바 연안항로를 운항중인 정기 여개선 1척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쿠바 당국은 전례없이 쿠바 주재 미국 이익대표부의 성명을 국영 TV방송를 통해 발표토록 허용한 것이다. 미 이익대표부의 제임스 케이슨 대표는 이 성명에서 "미국을 최종 목적지로 한(항공기와 여객선) 납치 및 인질극은 이를 명백히 범죄행위로 규정한 국제법과 미국국내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납치범들은 미국에 도착하더라도 국내 사법제도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정부의 성명이 쿠바 국영 TV방송을 통해 이처럼 여과없이 전파되기는 1958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피델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더 놀랄만한 일은 평소엔 "외교관 면책특권을 이용, 쿠바 반체제 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통해 이들의 반정부 활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 이익대표부를 극렬히 비난해왔던 카스트로 자신이 이번 만큼은 (미국에 대해) 적개심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오히려 성명발표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성명이 발표되는 동안 여객선을 미국과 쿠바간 공해상으로 끌고가 인질극을 벌였던 납치범들은 "미국 플로리다까지 가기에 충분한 연료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승객 40여명을 수장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명이 발표된 다음날인 3일 오전 여객선은 미 해안경비대 소속 함정과 헬기들이 여객선 주변을 맴돌며 사태를 예의주의하는 가운데 쿠바 해군함정에 이끌려 아바나 항구로 되돌아갔다. 납치사건에 대한 미 정부의 부정적 반응과 이익대표부의 성명까지 국영 TV를 통해 발표한 쿠바 당국의 재빠른 조치로 납치극은 일단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그러나 여객선 피랍사건은 미국과 쿠바의 이익이 우연히 일치해 순조롭게 해결된 것일 뿐 향후 두 나라는 다시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쿠바 당국은 "급기야 여객선 납치사건까지 벌어진 것은 미국이 이전에 발생한 항공기 납치사건으로 플로리다에 도착한 테러범들에게 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관대한 처분때문"이라며 미국에 책임을 물어왔다. 미국 역시 최근 쿠바 당국이 `미 정부관계자들과의 공모'를 구실로 반체제 인사 78명을 대량 검거, 재판에 회부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 양국 관계는 최근 수년만에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미국은 "전세계가 민주제도 도입 및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자유사회'를 지향하는 추세임에도 쿠바만은 스탈린식 철권통치시대로 후퇴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미국은 쿠바 당국의 이번 반체제 인사 탄압과 유죄로 몰아가려는 `약식재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휴먼 라이트 워치 등 미국 인권단체들도 쿠바 당국의 인권탄압에 우려를 표시하고 재판 중단과 반체제 인사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반체제 인사 대량 구속과 미국의 맹비난으로 양국 관계가 다시금 최악의 국면을 맞은 상태에서 납치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납치범 및 승객 처리문제에 고심하던 미국과 연이은 피랍사건으로 카스트로 체제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쿠바 당국은 묘한 동거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쿠바문제 전문가인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의 윌리엄 페오그란데 교수는 "쿠바 당국이 케이슨 이익대표부 대표를 `기피인물'로 지정, 미국 대표부의 자진폐쇄로 몰아가거나 쿠바가 먼저 폐쇄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이런 사건들이 터졌다"며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아바나 AFP.AP=연합뉴스) bigpen@yonhapnews.net